올해 나온 임철우 작가의 소설집이다. 일곱 편의 중,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전쟁의 처절함 대신 현대 문명에서 소외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뭔가 체한 듯한 느낌은 마찬가지다. 이번 소설집인 <연대기, 괴물>에는 인생의 가련함이 특히 두드러진다.
첫 작품인 '흔적'은 여객선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자살하는 70대 독거남이 주인공이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산속에서 홀로 지내던 당신은 갈 때가 다가왔음을 알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연대기, 괴물'은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60대 노숙자의 이야기다. 전쟁의 상흔이 그를 폐인으로 내몰았다. '세상의 모든 저녁'은 쪽방에서 독거사한 한 노인의 슬픈 이야기다. '간이역'에는 암에 걸린 아내와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젊은 부부가 나온다. '이야기 집'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 같다. 단추눈아짐과의 추억을 통해 애틋한 정을 풀어낸다. 가장 서정성이 짙은 작품이다. '남생이'는 기구한 가정사로 우울증에 걸린 한 여인을 다룬다. '물 위의 생'은 아우라지 뗏사공의 파란 많은 인생 이야기다.
이젠 작가의 작품에 익숙해서인지 처음과 같은 놀라움은 덜하다. 그래도 캄캄한 지하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만은 여전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가혹한 삶은 어디서 연유하게 되는 것인지 묻게 된다.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가 본질이다.
작가는 묻어두고 싶은, 외면하고픈 현실을 무자비하게 드러낸다. 진실은 회피할 게 아니라 직시해야 한다. 작가가 그리는 세상이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세상의 변화는 바로 볼 줄 아는 데서 시작한다.
작가는 왜 이렇게 무겁고 아픈 이야기만 쓸까? 어떤 피치 못할 절실함 때문이라고 한다. 아픔에 과도하게 예민하면서, 세상의 어둠과 난폭함을 견뎌내지 못하는 체질인 것 같다. 세상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한쪽 눈을 감아야겠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음을 임철우의 소설을 일깨워준다. 악몽을 꾸는 밤이 찾아올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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