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1973년에 만난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당시 이 선생은 마흔아홉, 권 선생은 서른일곱이었다. 아동문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분은 인생의 도반이 되어 사귀었다. 1976년 5월 31일 권 선생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혹시 만나 뵐까 싶어 버스 정류소에서 서성거려 보았습니다." 숨어 살던 권 선생을 세상에 알린 분이 이오덕 선생이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격려하고, 책 출판을 도와주었다.
권정생 선생이 평생을 병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편지를 보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상상 이상이었다. 아마 편지에서도 이 선생이 염려할까 봐 제대로 밝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썼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동시에 글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의 불꽃을 70세까지 타오르게 했는지 모른다.
1981년 11월의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저는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할 만큼 몸이 괴롭습니다.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된 대로 꼭 16일 동안 밤낮을 고통스럽게 지냈습니다... 이불을 한 아름 껴안고 뒹굴었다가 벽을 손톱으로 바득바득 긁었다가 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마당을 서성대다가 다시 방에 들어와 쓰러지고,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세상이 온통 흔들려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권 선생의 편지에는 문학 얘기와 함께 병과 고통에 대한 고백이 많이 나온다. 선생은 불행한 유년시절을 겪으며 결핵으로 몸이 망가졌다. 그것이 선생의 인생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과 분노가 곳곳에 보인다. 선생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도 그렇다고 보면 된다. 몇 대목을 옮겨 본다.
"인간으로 살 수 없는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 대학을 나온 학생이나, 낙오자가 되어 좌절과 실의에 빠진 학생이나 모두가 병든 사회의 생산품입니다. 그들 중 어디 인간이 있습니까? 국가기관이든 사회기관이든, 그들으 소수의 주인에게 사용되는 물건입니다."
"제가 고통스러운 것은 이런 가난한 이들의 슬픈 사연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버림받은 사람들을 착취하며 이용해 먹는 상대방 족속들에 대한 분노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억울하게 서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하는 이들, 종교 지도자라는 이들, 학자라는 이들, 애국자라는 이들은 모이면 돼먹지 않은 비현실적인 농지거리만 하는지 화가 안 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상대가 선할 땐 나도 선한 것이고, 상대가 약할 땐 나도 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악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선한 것도 아니라 다만 인간은 어리석다는 것뿐입니다. 지나친 지혜로움은 사악을 유발시키고, 지나치게 착한 것은 어리석음의 원인이 됩니다."
"외딴 집에 있으니까 많이 아파도 마음대로 아플 수 있어서 참 편합니다."
건방진 말인지 모르지만 권 선생의 편지글이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편지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두 분 외에 이현주, 전우익, 정호성, 이철수 씨가 있다. 각자의 책으로 다 만났던 분들이다. 이런 성향의 분들에게 무한히 끌린다.
편지라는 형식이나, 편지에 담긴 삶과 문학에 대한 진지함, 진실성, 순수성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이런 사람이나 이런 우정을 이제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선생님, 요즘 어떠하십니까>의 부제는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다. 편지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있다. '아름답다'는 말이 제일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의 우정이 동화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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