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두 달 전부터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게 이상 신호가 왔다. 음식을 마음대로 못 먹고 술과 커피도 못 하니 사는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래서 이참에 겸하여 대장까지 체크해 보기로 했다.
소화기관이 자주 탈 나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웠다. 이때껏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은 것은 건강에 대한 자신보다는 큰 병이 드러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혹 악성종양이 있다고 하면 어쩌지? 시한부 삶을 선고받으면? 최악의 상황에 대해 혼자 상상하며 사뭇 심각해지기도 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산골로 잠적해야지, 낭만적으로 죽음을 맞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 제발 고통 없이 갈 수 있다면, 아이들도 다 컸고 아내도 먹고 살 만큼은 되니 남은 가족에게 덜 미안해서 다행이고, 그런데 내가 떠나면 누가 가장 슬퍼할까, 블로그에는 담담하게 죽음의 일기를 써야지 등등, 별의별 공상을 다 해봤다.
수면 내시경이 참 편했다. 안정제 투여합니다, 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니 끝났다. 검사보다는 전날의 준비 단계가 더 힘들었다. 다행히 결과는 양호했다. 워낙 장이 말썽을 부려 대장에서 용종 서너 개는 떼어내야 할 줄 알았다. 입원할지 모른다며 아내는 칫솔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위염 증세만 보일 뿐 장은 그런대로 깨끗했다. 선생님한테 오랜만에 칭찬 받은 초등학생처럼 기분이 좋았다.
대항병원 간호사들은 무척 친절했다. 큰 대장전문병원이라 검사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예약하고 두세 주를 기다려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었지만 너무 기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검사를 받고 나니 내가 마치 불량품 검사 기계를 통과하고 나온 부품처럼 느껴졌다. 기술이 발달하고 시스템화 될 수록 인간 소외는 필연적인 현상인 것 같다. 그 점이 약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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