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신전리 느티나무

샌. 2011. 1. 22. 11:34


고향에 있는 신전리(新田里) 마을 앞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함께 했던 나무다. 그러나 우리가 다니던 길에서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 이 나무에 얽힌 추억은 거의 없다. 어쩌다 나무 옆을 지나게 될 때 올라가 놀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이 느티나무는 신전리 당산나무였다. 정월 대보름이 되기전 날에 동네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 동제(洞祭)을 지냈다고 한다. 먼저 연초가 되면 제사를 주관할 유사(有司)를 네 사람 뽑았다. 유사는 지난 한 해 동안 아무 흉사가 없었던 집에서 골라야 했다. 그리고 영주 우시장에서 가서 제물로 바칠 소를 사 가지고 오는데 소에게는 존칭을 썼다. 보통 "이랴!"라고 하지만 이 소에게는 마치 사람에게 하듯 "가시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강조하는 걸 보니 어머니에게는 그게 신기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한 해에 한 번씩 치러지는 동제는 옛날 마을 공동체의 화합을 다지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축제일이었다. 그 다음날인 정월 보름날에는 온 동네가 한 바탕 잔치를 벌렸다. 마을 농악대가 집집마다 돌며 풍악을 울리고 춤추며 놀았다. 나도 어릴 적에 할아버지 뒤를 따라다니며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전통문화로서의 축제가 어느 때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미신 추방을 내세우며 농촌 개조를 시작한 새마을운동 때부터였을 것이다. 농민의 의식을 바꾸려한 것이 아름다운 전통문화까지 소멸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물론 이제 신전리에서도 동제 같은 건 지내지 않는다.

 

이 나무는 지금 논밭 가운데 쓸쓸히 서 있다. 주민의 관심에서도 벗어나 있으니 찾아주는 사람도 없다. 나무나 자연물에 의지해 빌고 바랐던 옛사람들이 차라리 소박했다. 토테미즘은 미신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되찾아야 할 영혼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을 인간의 이용물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현대문명이 야기한 위기의 근원이다. 사람들과 교감하며 마음을 나누던 그때를 나무 역시 그리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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