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열심히 안 살아 다행이다

샌. 2019. 4. 9. 12:08

아흔이 가까워지면서 어머니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 죽을 둥 살 둥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았더니 다 헛것이었다. 너희들은 나같이 바보로 살지 마라. 좋은 데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건강을 챙겨라. 늙고 아프면 모든 게 쓸데없다.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식으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잘 못 해 드리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다. 어머니는 그래도 둘째네와 살고 있지만, 고향의 다른 노인은 독거로 지내시는 분이 많다. 자식이 많지만 전부 외지에 나가 있다. 밤중에 잠이 깨면 외로워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병과 외로움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부딪히는 실존의 문제다.

따져보면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생로병사는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만 특별할 수가 없다. 다만 이런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노인이 되면 작은 일에도 쉽게 토라지는데 어찌 거대한 인생사를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열심히 산 사람일수록 자신이 살아온 삶을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서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자식을 키워놓으면 노년에 당연히 부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면, 충족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외로움과 소외감을 더하는 요인이다.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는 열심히 안 살고 기대를 접는 게 차라리 낫다.

일을 하더라도 즐겁게 해야 한다. 뒷날의 보상이 아니라 현재가 행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기 일에 열심이어도 괜찮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일한다. 어찌 할 수 없다면 열심이나 하지 말자. 조금 덜 버는 게 정신 건강상 차라리 낫다.

너무 열심히 살면 노년이 되어서도 그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머니는 여든 넘어서까지 농사일을 하셨다. 노동 강도가 젊을 때와 비슷했다.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일흔 즈음에는 일을 줄이고 당신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후회 여부를 떠나 인생 자체가 다채로워졌을 것이다.

일에 몰두함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늙어서도 바쁘게 산다는 걸 자랑해서야 되겠는가. 개인마다 다르겠으나 인생에는 관조와 여유의 나잇대가 있다. 공백은 공백으로 놓아두는 편이 낫다.

사람은 제 생긴 대로 산다. 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충고한다고 방향을 바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열심히 살더라도 자신의 일이 갖는 의미를 항상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열심히'만큼 위험한 태도는 없다. 이제 주변을 둘러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열심히 안 살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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