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롱 피아비라는 캄보디아 출신 여자 당구 선수가 있다. 피아비는 2010년 스무 살 나이에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을 하고 우리나라에 왔다. 남편은 스물여덟 살이나 많았다. 의사가 꿈이었으나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타의로 낯선 나라에 온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온 뒤에 인생 역전이 일어났다. 결혼 이듬해 우연히 남편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큐를 잡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자세가 남달랐다. 재능을 알아본 남편이 당구 선수로 적극 지원했고,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여자 당구 3쿠션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2017년에 프로가 되었다. 프로 데뷔 10개월 만에 국내 1위에 올랐다. 현재 아시아 챔피언이자 세계 랭킹 3위에 올라 있다.
당구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상대가 잘 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피아비가 모 신문과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다. 긴장되는 시합을 할 때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안에는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있잖아요.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을 이기는 게 힘들죠. 상대방이 잘 치면 마음이 두근거려요. 엉망진창이 되죠. '괜찮다 괜찮다, 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걸어요. 제 안에서 '설거지'를 엄청 하는 거예요. 박수도 치면서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을 씻어내기 위해 마음의 '설거지'를 한다는 말이 와닿았다. 여자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표현이고, 그래서 더 생생하게 전해진다. 나는 집에서 설거지 담당이다. 요리는 못하지만 설거지 하기는 즐긴다. 지저분한 그릇이 깨끗하게 변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런데 마음의 설거지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역시 당구의 고수는 다르다.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두면 악취가 나고 엉망진창이 된다. 나중에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 될 지 모른다. 그때 그때 청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매일 설거지거리가 나오듯 마음도 수시로 오염된다. 원망, 질시, 교만, 분노, 미움 등에 의해 우리 마음은 더럽혀진다. 청정한 상태로 있을 때가 드물다. 더럽혀지면 빨리 알아채고 씻어내는 수밖에 없다. 게을러서 방치하면 손 쓸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근원으로 들어가서 싹을 도려낼 방법이 있을까? 돈오(頓悟)를 감히 바라지 못할지니 점수(漸修)밖에는 없는 일이다. 닦고 닦는 길 이외는 없다. 그것이 자신을 이기면서, 조금이라도 더 맑은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알아챔이다. 오래 방치된 마음은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 자각하지 못한다. 알지 못하면 고칠 수 없다. 그래서 순간순간의 설거지가 중요하다.
마음 설거지는 명상이나 기도 같은 종교적인 방법만 유효한 게 아니다. 나는 걸을 때와 책을 읽을 때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때 피아비가 말한 마음 설거지가 작동한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동으로 마음 청소를 한다.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진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자극을 받으면 더러운 성질은 다시 발현한다. 다만 알아챔에 대한 예민성으로 만족하면 된다.
스롱 피아비는 코리안 드림을 이루었으며, 앞으로 더 발전할 소지가 있다. 세계 1위 등극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녀는 상금으로 자신의 조국인 캄보디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활동을 많이 한다. 학교를 짓기 위해 부지도 사 놓았다고 한다. 당구를 잘 치면서 예쁜 마음씨를 가진 선수다. 앞으로 피아비 시합을 볼 때마다 그녀가 말한 '마음 설거지'가 떠오를 것이다. 자신을 단련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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