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운전이다. 운전대를 잡으면 기분이 고양되면서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종일 운전해도 피곤하거나 질리지 않는다. 무엇이건 즐기면 힘든 줄을 모른다. 나는 즐기면서 운전을 한다.
젊었을 때는 드라이브가 취미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었다. 속력을 높여 고속도로를 달리면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국도는 국도대로 달리는 맛이 있었다. 집 벽에는 대형 우리나라 전도가 걸려 있었는데, 내가 운전한 길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우리나라 전체를 빨간색으로 덮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안 간 길을 찾아 일부러 빙 돌아가는 일이 흔했다.
운전을 직업을 선택했다면 훨씬 더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하는 트럭 기사 스토리를 TV로 보았다. 일주일 정도 운전하는 장거리인데 고생이 된다기보다 가슴이 뛰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혼자 있다는 자유,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으로 나는 만족했을 것 같다.
운전 경력은 30년이 된다. 그동안 내가 원인이 된 사고는 없었다. 가만히 서 있는데 다른 차가 와서 부딪친 사고가 두 번 있었을 뿐이다. 나이가 드니 순발력이나 순간 대응 능력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만큼 조심하게 된다. 젊을 때에 비해 더 위험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는 과속 딱지도 많이 끊었는데, 지금은 안전 운전을 한다.
심심치 않게 고령자의 운전 미숙으로 인한 사고가 크게 보도된다. 며칠 전에는 통도사 입구에서 70대 노인이 가속기를 잘못 밟아 다수의 행인이 사상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고령자의 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고령자 운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자는 극단파도 있다.
여자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내면 '김여사'로 부르며 비하부터 한다. 노인도 마찬가지다. 여자나 노인의 사고 비율이 특별히 높을까?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 노인 운전을 무조건 비난하기 전에 통계를 확인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마침 '교통사고 분석 시스템'이라는 사이트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2011년부터 2018년 사이의 통계를 보니 65세 이상에서 사고건수가 증가한 게 사실이다. 7년 사이에 고령 운전자가 내는 사고건수가 13,596건에서 30,012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사망자수도 605명에서 843명으로 증가했다. 반면에 20대에서 40대까지는 모두 사고건수와 사상자수가 감소했다. 50대는 소폭 상승했다. 청장년 세대는 감소하고, 노년 세대는 증가하는 현상이 확연하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운전하는 숫자 대비 사고율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런 추세만으로도 우려할 만하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운전자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 같다. 앞으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뉴스를 자주 접할 것이고, 사회문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게 생겼다. 노년 세대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눈총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착잡하다.
신체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듯 운전 능력도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나 같은 경우는 앞으로 10년 동안은 거뜬히 운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운전이 지장 받을 정도로 지각 능력이 감퇴한다면 언제라도 그만둘 것이다. 그 기준은 옆에 탄 사람이 느끼는 불안감이다. 내 생각보다는 주변 사람의 의견을 당연히 존중해야겠다.
모든 것에서 종착역이 가까워진다. 좋아하는 운전을 못 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씁쓰레하다. 길어야 10년이 아니겠는가. 돌아보면 10년이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 뒤에는 걸음조차 힘들 때가 찾아올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내 한계를 인정하고, 조심하며 느긋하게 운전대를 잡을 일이다. 언젠가는 강제 하차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내려올 것이다. 노인이라고 눈칫밥을 먹으며 운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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