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

샌. 2019. 6. 3. 11:25

얼마 전에 갤럽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발표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60세로 세계 평균인 55세에 비해 높았다. 몇 나라별 평균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70세

한국        60세

영국        56세

미국        52세

독일        50세

일본        47세

중국        44세

 

대체로 유럽 국가가 높고 아시아 국가는 낮았는데, 한국은 예외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일본과 중국은 밑에 처져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40대 중반에 벌써 늙었다고 생각하는 건 의외다.

 

늙었다고 느끼는 나이도 몇 개의 단계가 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으면 누구나 늙어가는 걸 느낀다. 그러나 그때는 의욕이 팔팔할 때다. 늙어가는 과정이지 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늙어간다는 감정은 지속하면서 50대가 지나며 농도가 짙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손주가 생기고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도 이젠 늙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가 60세니 이번 조사에서 나온 우리나라 평균과 일치한다.

 

그래도 60세는 마음은 아직 젊다고 치부하는 나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못 할 것도 없다. 나는 60대 중반을 넘기면서 진짜로 늙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변곡점을 지난 것 같았. 예를 들면, 그전까지는 산티아고나 히말라야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60대 중반을 넘어서니 달라졌다. 두렵고 망설여지는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이젠 기회가 오더라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깜빡깜빡하는 일도 잦고, 엉뚱한 실수도 자꾸 튀어나온다. 아내도 다를 게 없다. 우리도 이젠 늙었구나, 하며 둘이서 씁쓸하게 웃는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늙었다는 느낌은 40대 중반에서 들기 시작해, 60세가 되면 주위에서 압박을 받고, 60대 중반이 되면 온몸으로 체험한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늙는다는 건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는 능력이 감퇴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 의욕도 감소하니 마음과 몸의 불일치로 인한 갈등이 크지는 않다. 적절히 포기할 줄 알게 된다. 높은 산을 못 가는 대신 동네 뒷산으로 만족할 줄 안다. 노년의 지혜란 다른 게 아니다. 자신이 할 줄 아는 범위에서 자족하는 삶이다. 노년은 노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그 재미는 자신이 찾는 것이다.

 

조사에서 이탈리아인은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70세로 굉장히 높다. 그들의 낙천성이 잘 드러난다. 허풍이 심한 기질도 있는가 보다. 중국과는 차이가 크다. 이걸 보면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런데 노년의 만족도 조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행복 한국과 연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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