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바림

샌. 2019. 6. 7. 09:58

나무의사 우종명 선생이 쓴 나무에 관한 에세이다. 그러나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묵직하다. 철학, 문학 등 다방면의 지식이 나무 이야기에 섞여 씨줄 날줄로 교차한다. 나무와 평생을 함께 살면서 얻은 깨달음이 녹아 있다. 나무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선생의 일가견을 글을 통해 접한다.

 

책은 5부로 되어 있다. 1부는 나무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오랜 시간이 낳은 선물일 것이다. 2부는 나무 예찬이다. 향기로운 나무, 뿌리 깊은 나무, 아름다운 나무, 죽지 않는 나무로 나누어져 있다. 3부는 나무의 본성과 생태적 특징을 다루었다. 생물학적 관찰에서 얻은 결과다. 4부는 나무가 우리에게 베푼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몽상, 걷기, 풍경, 치유로 되어 있다. 5부는 나무에 대한 예우와 나무의사의 윤리를 다루었다. 가로수를 볼 때 앞으로는 식물 윤리도 점차 중요해질 것 같다.

 

'무엇이 나무의 본성인가'라는 항목이 있다. 다른 생명체와는 다른 나무만의 특화된 본성을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나무는 단단하면서 유연하다. 유연함은 모든 생명체의 특징이지만, 나무에는 유연성과 단단함이 잘 조화되어 있다. 둘째, 나무에게는 리더가 없다. 전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관점이다. 숲을 그려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숲은 우두머리 없는 바둑판 같은 곳, 욕심이 없으므로 오래 사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두려움 없는, 잎은 하늘을 나는 듯, 뿌리는 땅속에서 잠자듯, 자연의 모든 생명들과 친교를 맺는 평화의 기술자."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을 숲은 구현하고 있다. 셋째, 나무는 속을 비운다. 사람이 나이 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워야 할 부분이다.

 

책 제목인 '바림'의 뜻은, 그림을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 앞서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이다. 그만큼 정성들여 이 책을 썼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무와 깊이 교류한 분의 깨달음을 머리만으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나무를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인간과 나무는 완전히 다른 감각 기관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바림>을 시간에 쫓기느라 속독으로 읽었다. 나중에 다시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파우스트는 말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생명나무의 녹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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