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하순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가는 나라의 개략적인 역사는 알아야 할 것 같아 이 책을 읽었다. 부제가 '처음 만나는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이다.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서희석 작가와, 역사학을 전공한 스페인 사람인 팔마 씨가 공저자다.
스페인 역사는 몇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기원 전후의 로마 제국 시대, 5세기 무렵의 서고트 왕국 시대, 8세기부터 13세기경까지 이슬람 점령 시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전성기, 합스부르크 왕조의 몰락과 쇠락기, 1900년대의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정권의 근현대 등이다.
<스페인: 유럽의 첫 번째 태양>에서는 1700년대까지의 스페인 역사가 서술된다. 근현대사가 빠진 것이 아쉽다.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는데 전혀 설명이 없다. 대신 왕권 투쟁이나 왕들에 얽힌 일화가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역사의 큰 맥을 짚어주면 더 좋았겠다.
스페인의 특징은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500년 넘게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이다. 국토의 전 지역은 아니었지만 다른 종교, 다른 문화의 영향을 오랜 기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스페인 남부의 이슬람 흔적을 확인하고 싶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슬람과 적대적이 아니라 공존하며 지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몰라도 이베리아반도 안에서는 가톨릭과 이슬람이 서로 배타적이 아니었다. 세금만 잘 납부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가톨릭교도나 유대교인도 이슬람 치하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유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슬람이 기독교보다 훨씬 더 관용을 베풀었다.
책에서는 세비야가 많이 등장한다. 세비야는 이슬람의 중심지였으며 여러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무대다. 14세기의 유대인 대학살, 악명 높은 종교 재판 등이 세비야에서 일어났다. 누에바 광장, 세비야 대성당, 히랄라 탑 같은 기념물도 있다. 헤라클레스 전설이 어린 스페인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역시 이번 여행에서 관심이 가는 도시다.
유럽 역사를 보면 국가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국가와 민족, 왕조가 뚜렷이 드러난다. 반면에 유럽은 어떤 면에서 엉망진창이다. 내가 일면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유럽 역사의 상당 부분은 그저 정략결혼과 땅따먹기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는 그래도 명분이 있지만 얘들은 그마저도 내팽개쳤다. 유럽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나며 세계사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야만의 땅이었다.
대항해 시대를 열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처음으로 건설한 나라가 스페인이다. 영국과 미국에 밀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스페인은 아픈 근현대사를 겪으며 지금의 매력적인 나라로 되었다. 또한, 근대에 들어 피카소와 가우디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 첫날 일정이 잡혀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어떤 작품을 만날지 기대된다.
스페인에서는 라임, 민트, 설탕 시럽을 넣어 만든 모히토라는 칵테일을 많이 마신다고 한다. 모히토를 만드는 재료 중에 하나만 빠져도 모히토는 모히토가 아니다. 스페인도 모히토 같은 나라다. 오늘날의 스페인이 등장하기까지 스페인을 거쳐 갔던 모든 민족의 역사가 곧 스페인이기 때문이다. 5천 년 단일민족이라고 하면 스페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어할지 모른다. 어쨌든 설레는 이번 스페인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