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으나 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전체 경제 수준은 상당한 레벨에 올라섰다. 밖에서는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인정해 준다. 그런데 국민이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일인당 소득 3만 달러라는 통계가 무색하다. 국민의 행복도는 OECD에서 항상 하위권이다.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빈곤감이 큰 원인이다.
한국은 지나친 경쟁 사회여서 가정이나 직장 모두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경쟁 시스템에 길들여진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욕망끼리 충돌하며 불꽃이 인다. 농촌 공동체의 두레 정신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도시 생활은 사막과 같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경계부터 한다.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이 바글거리니 짜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무례하고 공격적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실종되었다. 정치인들의 거친 언사를 보면 피폐해진 우리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들 성정이 왜 이렇게 난폭해졌을까. 내 눈에는 계급 사회가 고착화하는 데 대한 절망과 분노로 보인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삶이 결정된다면, 귀족과 노예로 갈린 과거의 신분 사회와 다를 게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일 뿐이라면,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적대적으로 되며 혁명을 꿈꾼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을 이룰 수 있거나, 종교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사람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경제가 나빠서가 아니라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 정신이 되어야 한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지지만 아직까지 체감 효과는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 참여 정부 때도 그랬고, 진보 정권이 집권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게 없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고 남탓으로 돌릴 일도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 구조의 질적인 전환이 없이는 쉽게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김구 선생이 말한 대로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소망한다. 홍익인간이나 박애 같은 거창한 구호는 필요 없다. 우리가 지향할 가치는 이웃에 대한 친절, 공손, 배려다. 이 셋에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예수의 사랑이나 부처의 자비도 결국 이웃에 대한 친절, 공손, 배려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예배당에서 기도한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돈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다.
이만큼 부의 축적을 이루었으면
나는 친절, 공손, 배려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최우선 가치라고 생각한다. 가난했던 시기에는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게 제일의 목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정한 부와 분배 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양극화가 해소되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되살아나야 한다. 끊이지 않고 터지는 인면수심의 범죄가 사형제도를 시행한다고 없어지겠는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 중심에 이웃에 대한 친절, 공손, 배려가 있다.
이렇게 쓰긴 하지만 나를 돌아보면 내 가족에게조차 이 세 미덕을 실천하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는 가족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대하는 측면도 있다. 사람의 됨됨이는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달려 있지 않은가. 이웃도 멀다. 우선 가정이 친절, 공손, 배려의 정신을 습득하는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지역 사회로, 지역 사회에서 국가로 퍼져 나갈 때 나라는 건강해질 것이다. 그러자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온갖 사회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게 기본을 지키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살이가 만만치 않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