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행복을 생각한다

샌. 2019. 5. 27. 11:15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유전자는 한 사람외모나 기질을 결정한다. 심지어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장래에 생길 병도 예견할 수 있다. 외국의 유명 배우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서 미리 유방 절제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니 행복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낙천적인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비관적인 사람에 비해 높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행복에 관계되는지 밝히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행복하게 사는 능력도 상당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그렇다고 조상 탓만 할 수는 없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의하면 많은 부분이 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은 순전히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변수가 많다. 훈련에 의해서 행복도를 높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같은 상황을 어떤 사람은 긍정적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절망적으로 본다. 타고나는 낙천성의 다른 이름을 행복유전자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유전공학이 발전하면 행복유전자도 마음대로 조작이 가능할지 모른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미래의 독재자가 노동 계급이 감정을 갖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세뇌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휑하니 넓은 방에 아기들을 모아놓고 반대편에서 예쁜 꽃을 보여준다. 꽃이 있는 바닥은 철판으로 되어 있다. 아기들은 꽃을 잡기 위해 기어간다. 꽃을 잡으려고 할 때 전기 스위치를 올리 아기들은 감전되어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걸 반복하면 꽃을 봐도 절대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혐오하고 무서워한다. 평생을 노동에 전념시키기 위해 벌이는 짓이다.

만약 행복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떤 가혹한 조건에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게 할 수 있다. 노예가 노예인 줄을 모른다. 제일 비참한 일이다. 불행을 불행으로 알아야 그 상태를 개선하는 노력을 할 수 있다. 인생 최대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돼지우리에서 뒹굴어도 행복하다고만 느끼면 그만일까. 행복 이전에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다. 멍청한 낙관주의자만큼 불쌍한 인간도 없다.

국가나 회사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신을 '임금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유인은 스스로 자기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자유인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요사이 여기저기서 강조하는 행복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이 생략되어 있다. 심하게 말하면 그저 만족하는 노예를 만들려고 한다. 물론 그럴 의도는 아니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행복 이전에 우선 자신에 대한 자각이 중요하지 않을까. 사회 구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탄탄한 행복은 거기서 출발해야 마땅하다. 생각 없는 낙관주의자보다는 고뇌하는 비관주의자가 오히려 낫다.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족하는 소크라테스를 나는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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