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이럴 수도 있지

샌. 2019. 7. 15. 10:08

낯선 외국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가진 재산 다 털어먹고 빚까지 졌어. 희망이 없었어. 가족은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뒷정리를 했어. 살아갈 일이 막막하더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스페인 북부로 정처 없이 떠났어. 사람이 적고 쓸쓸한 풍경을 택한 거지. 며칠 동안 바닷가를 배회하니 가진 돈도 다 떨어졌어. 절벽 위에도 서 봤지만 도저히 뛰어내릴 용기는 없더군. 그러다가 너무 배가 고파 바닷가에 있는 허름한 집 대문을 노크했어. 노부부 두 분이 사는데 따뜻이 맞아주더군. 내 행색이 그랬나 봐.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며 그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지냈어. 그분들도 자식처럼 대해줬어. 저녁을 먹고 나면 두 분은 소파에서 손을 맞잡고 TV를 보는 거야. 작은 화면에 금방 고장이라도 날 것 같은 수십 년 된 TV였어. 두 분은 TV를 보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해. 행복이란 이런 거구나, 두 분을 보며 깨달았어.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나는 믿고 있었거든. 두 분은 자식 둘을 뒀는데 아들은 사고로 죽었고, 말썽만 부리던 딸은 재산을 다 말아먹고 소식이 끊어졌다고 해. 행복할 조건은 하나도 없었어. 그런데 두 분은 더없이 행복한 거야. 힘든 인생을 어찌 살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어. "이럴 수도 있지!"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항상 이 말을 새긴다는 거야. 인생의 철인들이시지. "이럴 수도 있지!", 나도 이 말 때문에 살아났어. 파도가 무엇을 실어다 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 두 분의 삶과 따스한 환대에 용기를 얻고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 그래서 이만큼 성공했지. 그 뒤로 두 분을 자주 찾아뵈며 지냈어. 두 분도 나를 자식으로 생각했어.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 남으셨어. 아버지는 아침을 드시고 나면 의자 하나를 가지고 외출하셔. 할머니 묘에 가서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거야. 함께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어. 아버지도 얼마 안 가 돌아가셨어. 장례를 잘 치러드렸지. 두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은인과 같은 분이시지.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힘들 때는 아버지가 전해 준 이 말을 기억하지. "이럴 수도 있지!" 그러면 새 힘이 솟구쳐.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야. "이럴 수도 있지, 뭐." 호탕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갈 거야.

 

* 스페인 여행 중에 들은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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