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47]

샌. 2010. 12. 12. 08:09

도는 귀로 들을 수 없다. 들었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눈으로 볼 수 없다. 보았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입으로 말할 수 없다. 말했다면 도가 아니다.

형체를 지각할 수는 있지만

그 형상(形狀)은 형상(形相)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이름 붙이는 것은 합당치 않다.

 

道不可聞 聞而非也

道不可見 見而非也

道不可言 言而非也

知形

形之不形乎

道不當名

 

- 知北遊 10

 

도덕경의 '道可道非常道'를 떠올리게 한다. 도는 귀로 들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입으로 말할 수도, 마음으로 알 수도 없다. 인간의 감각이나 인지작용을 초월해 있다. 도를 말하는 순간 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도는 물을 수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도를 물었을 때 무언가 대답한다면 그는 도를 모르는 자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하면 깊고, 안다고 하면 얕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이요,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의 역설이다.

 

도덕경 12장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도를 깨달은 사람은 도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도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은 도를 모른다.

도를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입을 막고, 눈과 귀를 닫으며,

자신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엉클어진 것을 풀며,

자신의 눈부신 빛을 감추어 기꺼이 티끌과 하나가 된다.

이를 일러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 도와 깊이 하나를 이루었다고 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도가(道家)는 유가(儒家)에 비해 훨씬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이다. 불교와도 쉽게 융합해서 선불교가 중국에서 꽃을 피웠다. 둘은 우상파괴라는 면에서 매우 닮았다. 그런 관점이라면 기독교의 신 역시 인간이 이름을 붙이거나 형상을 상상할 수가 없다. 장자의 말대로라면 신을 부르는 순간 신은 사라진다.

 

그래도 사람들은 묻는다. "도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間有眞意

欲辨已忘言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꺾어들고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본다

산 기운은 해질녘에 더욱 아름답고

떠돌던 새들도 무리지어 돌아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니

말하고자 하나 이미 할 말을 잊었다네

 

'삶의나침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149]  (0) 2010.12.28
장자[148]  (0) 2010.12.19
장자[146]  (0) 2010.12.05
장자[145]  (0) 2010.11.27
장자[144]  (0) 201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