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신발 소동

샌. 2010. 11. 29. 11:57

식당에서 나왔는데 내 신발이 없어졌다. 신발장에 하나 남아 있는 것은 영 낯설었다. 주인을 불러내고 일행 십여 명이서 소란을 부렸다. 범인은 먼저 나갔던 옆 테이블 손님들이 분명했다. 다행히 주인이 아는 사람들이라 해서 전화 연락을 취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멍청한 놈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남의 것이지만 신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발에 넣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이런 아뿔싸, 내 신발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계속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그 동안의 소동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친구들한테는 또 얼마나 실없는 놈으로 낙인찍힐 것인가.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그런데 어디에나 의리파가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은 대책을 세우라며 주인을 닦달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고성이 들렸다. 이러다가 앞서 나간 손님들이 왔다가는 개창피를 당할 노릇이었다. 다시 돌아가서는 내 신발이 맞다, 고 하면서 친구들을 달래서 나왔다. 다행히 친구들은 내 말을 그대로 믿어주지 않았다. 남의 신발을 별 까탈 부리지 않고 신고 나가는 내가 무척 너그럽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제 시골의 한 식당에서 있었던 해프닝이었다.


도저히 이해 안 될 일이었다. 내 신발을 두고도 내 신발이 아니라고 난리를 쳤다. 하루 이틀 신은 것도 아니고 여러 달 계속 신은 신발을 왜 내 것이 아니라고 단정했을까? 어느 순간 그 신발이 왜 그렇게 낯설게 다가왔을까? 술이 취한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생긴 신발이냐고 묻는데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구두끈이 있는지 없는지, 가운데에 줄무늬가 있는지 없는지 헛갈리기만 했다. 벌써 치매가 왔단 말인가, 내 자신에 이렇게 황당하기는 처음이었다.


내 신발이 아닌 것 같아도 한 번 신어보기만 했어도 이런 소동은 없었을 것이다. 내 신발이 아니라고 판단하니까 그냥 외곬수가 되어 버렸다. 이건 내 신발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잘못 신고 간 거다. 타인을 원망하는 마음만 있었지 혹 내가 잘못 되었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주인을 부르고 큰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이런 사고의 경직성이 무서운 거였다. 내가 늘 옳다는 외곬 생각이 노인의 똥고집이 아니던가. 주책이 아닐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나라가 시끄러운데 설마 지도자들 중에 나 같이 멍청한 인간은 없겠지. 괜히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어리석은 짓은 나 하나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들, 어제는 미안했네. 그리고 식당 주인님에게도 죄송했습니다. 다음에 내려가게 되면 꼭 들리겠어요. 물론 부끄러웠던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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