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블로그에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샌. 2010. 12. 6. 10:49

D씨와는 블로그 인연이 오래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초기인 2004년에 알게 되었으니 햇수로 7년이나 된다. D씨도 그때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는데 나와 달리 블로거들과 교류도 활발하고 글도 많이 올렸다. 여러 방면에 재주가 많으신 분이었다. 어느 날 내 블로그를 찾아와서 댓글을 달아서 알게 되었는데 나와 연배가 비슷했다. 그래서 더 친밀감을 느꼈지만 생각하는 바가 틀려서 공감을 나누기는 어려웠다. 글로 본 D씨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었고 프라이드가 강한 완고한 타입이었다. 그러다보니 댓글도 끊어졌고 그분의 이웃 명단에 내 이름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나 역시 찾는 횟수가 뜸해졌다. 그러나 가끔씩은 그분 블로그에 접속해 글을 읽고는 했다. 3천개가 넘는 글 중에서도 나비와 역사에 대한 내용은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반짝이는 천재성이 그분 글의 매력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글이 올라오는 횟수가 뜸해졌다. 전에는 거의 매일 한두 개씩의 글을 올린 분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생에 대한 회한 가득한 글이 올라왔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어두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 의아하게만 여겼을 뿐 죽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전 들어갔을 때 이 블로그의 주인이 돌아가셨다는 댓글이 달리고 여러 사람의 애도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어제는 ‘블로그에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라는 안내가 뜨면서 모든 글이 사라졌다. 아마 지인 중 누군가가 삭제한 모양이었다.


수천 개의 글로 차있던 블로그가 텅 빈 것을 보니 비로소 D씨의 부재가 느껴졌다. 죽음으로 육체가 소멸하듯 그분이 남겼던 삶의 흔적도 무로 돌아갔다. 그것은 시간의 차이만 있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애지중지하며 올리는 내 글들도 언젠가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 것이다. 어느 날 나에게도 인생을 정리해야 할 때가 찾아오면 우선 블로그를 깨끗이 delete할 것이다. 만약 돌연사라도 하게 되면 지인들이 그 작업을 해 주리라 믿는다. 죽고 나서 구차한 흔적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먼 미래는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살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로 돌린다. 이승의 일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I씨의 홈피는 특이하다. I씨는 거의 한 달 주기로 홈피의 글을 스스로 삭제한다. 모두가 주옥같은 사진이나 글인데 어느 날 보면 없어졌다. 처음에는 예술가라서 괴팍하다 생각했는데 I씨야말로 공수래공수거를 실천하는 분인지 모른다. I씨를 보면 좋은 작품이나 글을 남기려는 것도 욕심으로 보인다. 블로그에 쓰는 글에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공개된 블로그 공간을 이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소통의 공간마저 없다면 인생을 더욱 쓸쓸할 것 같다. 죽음은 그 쓸쓸함마저도 앗아간다.


D씨의 명복을 빈다. 얼굴도 이름도 아무 것도 모르는 분이었지만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만나 긴 시간 인연이 이어졌다. 그분은 숨어 있었던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다시 그분의 글을 접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다. 저 세상에서는 평안하시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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