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도 발전을 위한 개발이라면 무난하다."
"발전을 위한 개발이냐, 파괴를 위한 개발이냐는 자연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다룰 문제이지 종교의 분야는 아니다."
"정치와 경제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밤새면서 전력을 다하는 전문가들이 있고,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하느님 뜻을 헤아리는 데는 밤낮 생각하니까 하느님 뜻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다."
지난 8일의 추기경 발언이 이랬다.
어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으로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다.
< 추기경의 궤변 >
고령을 감안하고 막중한 직무를 존중하여 추기경에 대한 쓴 소리는 삼가고 삼갔다. 그런데 더 이상의 인내는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으니 최근의 언행이 생명과 평화라는 보편가치에 위배되고 사도좌의 가르침마저 심각하게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2월 8일의 기자간담회의 말씀은 교회 안팎에 엄청난 파문과 혼란을 일으켰다.
추기경은 파괴를 위한 개발과 발전을 위한 개발은 구분되어야 한다며 현행 4대강사업이 ‘파괴적 개발’인지 ‘발전적 개발’인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혹은 꼭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사견을 밝힌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의 결정을 함부로 왜곡하셨다는 점이다. “주교단이 4대강사업이 자연을 파괴하고 난개발의 위험을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는 소리는 안했다. 오히려 (주교회의 성명은)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개발하라는 적극적인 의미로도 볼 수 있다”(경향신문 12.8)
아, 이게 무슨 말씀인가! 그렇다면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도 신년 메시지는 어떤 호소였을까? 또 “조상 대대로 금수강산이라 일컫던 자연 환경은 우리의 무관심과 어리석음으로 망가졌고, 지금도 자연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4대강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4대강사업은 대표적인 난개발”이라는 주교회의의 거듭된 질타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창조질서회복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실천, 2010.10.27) 추기경의 과오는 사도좌의 높은 가르침을 거슬렀다는 것과 이천년 교회전통인 주교단의 합의정신(sinodalitas)과 단체성(collegialitas)을 깨뜨린 이 두 가지부터 출발한다.
게다가 4대강사업에 대한 판단은 “자연과학자들이 다루는 문제요, 토목 공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다룰 문제지 종교인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셨다. 물론 그렇다. 동의한다. 그래서 주교회의는 4대강사업 초기부터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환경소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여러 차례 경청했으며, 지난 봄 닷새에 걸친 총회에서 전국 교구 주교들과 수도회 아빠스가 모여 이 문제를 깊이 검토하고 논의한 끝에 마침내 올해 3월 12일의 결론을 주교단의 이름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잘못이란 말인가? 추기경은 주교회의의 분별력을 경시했고 그 정도의 판단행위마저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릴 줄 아는 분별의 힘이 아니라면(필립 1,10 참조) 교회는 무엇으로 교회가 되는가?
다음, 추기경은 4대강사업에 대해서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영산강은 제대로 간다고 하지 않느냐”고 하셨다. 이런 말씀은 당신이 사목적 혜안을 과감하게 포기했거나 아예 갖추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추기경께서 성경의 예언자들을 소개하기 위해 새 책을 썼다던데 그분의 예언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잠자코 결과를 기다리자는 것은 거짓 예언이다. 주님의 예언자들은 훗날의 멸망을 내다보고 당장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결과를 지켜보고 말해야 한다는 일반론도 4대강 사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등 법이 규정해둔 절차와 과정을 대부분 건너뛰거나 무시한 것은 삼척동자까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추기경께선 이런 점을 아니 보시고 양들의 침묵을 바라시니 어찌된 셈판인가. 시중에 나도는 4대강 ‘난개발’과 명동성당 ‘불법개발’이 한 통속이라는 소문이 자꾸만 솔깃하게 들린다.
유감스럽지만 4대강공사 때문에 빚어진 교회분열의 가장 큰 책임은 추기경께 돌아간다는 말씀을 드려야겠다. 작년 말 정부가 4대강공사를 기습 강행하면서 찬반양론에 시달리던 교회는 춘계주교회의의 결의 이후, 빠른 속도로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소 이견이 분출되기도 하였으나 “신앙의 유권적 학자요 스승으로서 주교들이 한국교회의 모든 백성들에게 드리는 주교단의 일치되고 공통된 가르침이니 신자라면 당연히 순명하고 지켜야 한다.”는 강우일 의장주교의 말씀으로(6.14 양수리성당) 대부분의 잡음은 잦아들고 있었다. 그런데 전국사제기도회가 명동성당의 탄압에 시달린데 이어 “4대강사업은 과학적, 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종교계가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한국일보 7.21)는 추기경의 발언이 나오면서 신자들은 다시 우왕좌왕했고 찬반진영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새삼스레 지도자의 덕목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다.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평화의 경륜’이나 벼랑 끝에 몰린 생태계를 살리는 ‘생명의 지혜’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대화를 촉구하고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던 교황들의 심정을 대변해야 할 추기경이 대중의 흥분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불행이다. 오리무중, 오늘의 시름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고 답답하다. 노여우시겠으나 부디 사제들의 충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삼가 청한다.
2010년 12월 1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