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11]

샌. 2021. 4. 22. 16:15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시자 군중이 모두 모여 왔고,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거리를 지나가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나를 따르시오" 하시자, 그가 일어나 따라왔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예수와 그분 제자들이랑 더불어 먹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사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랑 어울려 잡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저분은 세리와 죄인이랑 어울려 먹소?" 예수께서 듣고 말씀하셨다. "의사란 건강한 이가 아니라 앓는 이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 마르코 2,13-17

 

 

예수의 식탁에 함께 한 사람들을 보면 예수가 얼마나 파격적인 분인지 알 수 있다. 세리는 세금을 징수하는 로마의 앞잡이다. 유대인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죄인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다. 입에 풀칠하기 바쁜 사람들이 유대교의 수많은 계율을 제대로 준수할 수 없다. 그들은 사회 체제 안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반대로 바리사이파는 율법을 엄격히 지킴으로써 유대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그룹이다. 바리사이파는 세리나 죄인들과는 교류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의(義)나 죄(罪)는 인간이 작의적으로 나눈 것이지 하느님과는 관계가 없다고 예수는 선언한다. 그런 사실을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함으로써 공개적으로 당당히 보여준다. 오히려 하느님은 의롭다고 존경을 받는 바리사이파가 아니라 죄인과 함께 하신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통념을 뒤집는 발상이다. 성경과 율법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바리사이파로서는 눈이 뒤집힐 만도 하다. 그러나 예수를 따른 사람이 많았던 걸 보면 예수의 메시지는 상당 부분 유대 민중에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예수의 속뜻을 얼마나 알아차렸는지가 의문이긴 하지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 여기에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드러난다. 죄인은 다른 말로 하면 체제에 희생된 사람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인간 이하의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수는 이런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병든 몸을 고쳐주면서, 그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바로 하느님 나라다. 하느님 나라는 체제나 종교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나라다.

 

만약 우리 시대에 예수가 오신다면 어떤 언행을 보이며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거대하고 삐까뻔쩍한 교회나 성당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이 완고한 종교 시스템이 가장 두려움을 느낄 만한 인물이 아닐까. 이 시대의 모범 신자가 "뭐, 저런 꼴통이 다 있지?"라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예수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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