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9]

샌. 2021. 3. 22. 10:02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무릎 꿇고 간청했다. "선생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측은히 여겨 손을 펴서 만져주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그러자 곧 나병이 물러가고 그는 깨끗해졌다. 예수께서 곧 그를 내보내며 엄히 경고하셨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다만, 가서 제관에게 몸을 보이고, 모세가 지시한 것들을 갖다 바쳐 깨끗해졌다는 증거가 되게 하시오." 그러나 그가 떠나가서 널리 알리고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했으므로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외딴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분을 찾아왔다.

 

- 마르코 1,40-45

 

 

예수가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며 여러 고을을 찾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난 반면에 자신의 행적을 감추려는 의도가 여러 차례 보인다. 소문이 나고 유명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같다. 처음 성경을 읽었을 때는 이 점이 의아했다. 드러내 놓고 말씀을 선포하고 사람을 모으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운동의 효과가 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당시 상황을 보면 예수의 처신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바로 전까지 세례자 요한은 요단강에서 죄 사람의 세례를 베풀며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는 기득권층을 향한 독설도 서슴치 않았다. 용기 있는 새로운 종교 운동이었지만 세례자 요한은 권력자의 미움을 받고 처형되었다. 그의 시도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마 이 사건이 예수에게는 큰 교훈으로 남았을 것이다.

 

당시 유대 민중은 나라를 구할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자신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사단이 벌어질지 몰랐다. 예수 운동이 집권층의 시선을 끌게 되고 체제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제2의 세례자 요한이 될 게 뻔했다. 그랬다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알리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을 일이었다. 엉뚱한 빌미를 줘서는 안 됐다.

 

예수는 나병환자를 고쳐주면서 전통적인 유대교의 절차대로 제관에게 나은 몸을 보이고 제물을 바치라고 한다. 그는 이제 정상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대신에 병 고친 사실을 떠벌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물론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소문이 나고 너무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예수는 고을로 들어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예수의 메시지보다는 병 고침을 받고 이적을 보기를 원한다.

 

초기의 예수는 굉장히 조심스럽다. 자신의 등장이 유대 사회에 어떤 풍파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두려움 속에서 예수는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간다. 예수는 따르는 민중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앞길에 드리운 빛과 어둠을 서서히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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