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7]

샌. 2021. 2. 21. 08:40

그때 마침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회당에 있다가 외쳤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를 없애려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잠자코 떠나가라" 하고 꾸짖으시자 더러운 영이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 서로 캐물으며 "이게 웬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저분이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였다. 그분 소문이 곧 갈릴래아 근방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곧 회당에서 떠나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는데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이 나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곧 사정을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다가가 손을 잡아 부인을 일으키시자 열이 떨어지고 부인은 그들을 시중들었다.

저녁이 되어 해가 지자, 사람들이 앓는 이들과 귀신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갖가지 질병으로 앓고 있는 많은 이를 고쳐 주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분은 귀신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그냥 두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 마르코 1,23-34

 

 

회당에서 가르치는 일과 함께 예수의 첫 활동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낫게 하는 일이었다. 복음서에는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쳐주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고통받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예수 복음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현대 의학에서는 육체의 질병인 것도 당시 사람들은 귀신 들린 현상으로 보았을 것이다. 질병을 대하는 관점이 지금의 우리와는 달랐다.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귀신 이야기는 당시의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유대교에서는 귀신들림이나 질병을 하느님의 저주로 보았다. 그렇다면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치는 데는 종교적인 참회의 절차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말과 손 잡는 행위로 이 모든 것을 수행한다. 전통적인 처방과 다르니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치는 일은 넓게 보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개인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킨 것이 하느님 나라 운동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예수는 꿈꾸었다. 온갖 정치적, 종교적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예수의 소명이었는지 모른다. 마르코복음을 읽으며 내가 만나는 예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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