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대상포진 경과

샌. 2021. 4. 28. 11:09

여섯째 날

일어나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특히 눈두덩과 입술 부분이 심하다. 물집은 계속 생겼다 터졌다를 반복한다. 다행히 통증은 약해서 견딜만하다. 진료는 내일이지만 주사라도 미리 맞으려고 병원을 찾았다가 휴원일이라 헛걸음하다. 대상포진 이놈 만만찮다.

 

일곱째 날

어제저녁 8시에 침대에 들어가서 오늘 아침 8시에 일어났으니 무려 12시간을 잔 셈이다. 얼굴 부기는 여전하고 두통이 다시 나타난다. 두통은 어젯밤에 너무 길게 누워 있던 탓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 병원 진료받다. 얼굴과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오다. 의사는 대상포진 증세가 이제 정점을 지나고 있다고 한다.

 

여덟째 날

대상포진에 걸린 이후로 식욕이 엄청 왕성하다. 평상시의 너댓 배는 먹는 것 같다. 아내는 먹을거리를 계속 사 온다. 안 먹던 과자와 간식거리도 식탁에 가득하다. 몸이 영양분을 자꾸만 요구하는 것 같다. 병세에서 벗어나는 좋은 징조로 보인다. 가까운 친척 결혼식이 있었지만 나가지 못하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종일 빈둥거리다.

 

아홉째 날

부기가 빠지면서 전체적인 상태가 살짝 호전되다. 기분이 좋아지다. 오후에는 집 주변 마을을 산책하다. 병원 왕래를 제외하면 9일 만의 외출이다. 봄 기운을 만끽하다.

 

열째 날

몸이 아프니 바깥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빠른 회복을 위해 집에서 쉬다. 잘 먹는 것은 여전하다. 며칠 사이에 몸무게가 3kg이 늘었다.

 

열하나째 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예상대로 마지막 진료가 되다. 얼굴 주사를 맞고 약과 연고를 받아오다. 의사는 수월하게 병치레를 했다고 말한다. 내 바이러스에게 감사해야 할까. 처음 대상포진이라는 걸 알았을 때 통증을 제일 걱정했다. 그러나 일찍 발견해서인지는 몰라도 포진의 통증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두통이 더 신경 쓰였다. 대상포진은 얼마나 빨리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 고생을 하느냐 아니냐가 달린 것 같다. 골든 타임이 발견 후 72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두통이 오면서 코 밑에 물집이 생겼을 때는 대상포진인 줄 몰랐다. 그래도 다행히 사흘을 넘기지 않고 병원을 찾아갔다. 동생이 영양 보충하라며 한우를 보내오다.

 

열둘째 날(오늘)

부기는 완전히 빠지고 얼굴 모양이 좌우 균형이 맞는다. 피부 표면은 전기가 통하는 듯 가끔 찌릿찌릿하다. 그래도 이만하면 양반이다. 연고를 발라주니 원래의 피부색이 돌아온다. 군데군데 흉터가 생겨 있는데 깨끗해질지는 미지수다. 몸 상태는 주말쯤 되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대개 두 주일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 상태가 나쁘면 몇 달, 아니 일 년 넘게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 손상된 신경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증세가 가벼워 단기간에 지나가고 있다. 대상포진은 면역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면역이 약해지면 잠재해 있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활성화되어 말썽을 부린다. 한 친구는 나에게 다식(多食), 다동(多動)을 하라고 충고한다. 그동안 나는 소식(小食), 소동(小動)주의였다. 내 체질에는 후자가 맞는다. 앞으로 생활 습관을 수정할 필요가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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