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은 극점 탐험의 시대였다. 1911년의 남극점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은 유명하다. 둘의 명성에 가려진 또 다른 위대한 탐험가가 있다. 남극 대륙 횡단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영국의 어니스트 셰클턴(Ernest Shackleton, 1874~1922)이다.
셰클턴은 1909년에 남극점에 도전했다가 식량 부족 때문에 155km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만약 무리하게 전진했다면 스콧처럼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2년 뒤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하자 셰클턴은 목표를 바꾸어 남극 대륙 횡단에 나선다. 27명의 대원과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장도에 오른 것이다.
알렉산더가 쓴 <인듀어런스(The ENDURANCE)>는 이 탐험에 관한 기록이다. 동행한 사진사 헐리가 찍은 사진이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주며 우리를 현장으로 안내한다.
'위대한 실패'라 불리는 이 여정을 통해 섀클턴과 대원은 인간의 능력과 열정이 얼마나 위대하면서, 또한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탐사대는 1914년 8월에 영국을 출발하여 12월에 사우스 조지아섬을 거쳐 남극해에 들어섰지만 부빙에 갇히게 된다. 남극에는 발을 디디지도 못한 채 10개월 동안 부빙에 포위되어 표류하다가 인듀어런스호는 부빙의 압력에 부서져 침몰한다. 구명보트와 식량을 부빙 위에 옮기고 추위와 싸우며 해류에 떠밀려 170일 동안 헤맨 끝에 천신만고로 남극반도 끝에 있는 엘리펀트섬에 상륙한다. 이곳 역시 펭귄만 사는 얼음으로 된 불모지였다.
다가오는 최후를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서 셰클턴은 대원 5명과 함께 작은 보트를 타고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2,000km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섬으로 향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들은 악천후 속 험한 바다를 헤치고 20일 만에 섬에 닿는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포경 기지까지 가자면 섬을 가로지르며 험준한 산을 넘어야 했다. 그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악전고투 끝에 겨우 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펀트섬에 남은 대원 22명은 펭귄을 잡아먹으며 대장이 오기만 기다린다. 섀클턴은 구조선을 어렵게 구했지만 기상악화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 석 달여 만인 1916년 8월 30일에 드디어 엘리펀트섬에 가서 남은 22명을 전부 구조한다. 남극이라는 극한의 지역에서 조난 637일 동안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귀환하게 된 것이다. 역사는 이를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라고 부른다.
책을 통해 인간 승리의 진한 감동을 맛봤다. 섀클턴이라는 훌륭한 리더가 있었기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특히 작은 구조 보트를 타고 무려 20일 동안 험한 남극 바다를 헤치고 나가 2천 km나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섬에 이르는 과정은 인간의 의지와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다. 엘리펀트섬 앞바다에 구조선이 나타나고 섀클턴과 남은 대원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성공보다 더 위대한 실패였다.
섀클턴은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드디어 해냈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나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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