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예수냐 바울이냐

샌. 2022. 2. 25. 11:28

"바울의 기독교 신학 안에 갈릴래아 청년 예수의 정신은 없다."

 

저자인 문동환 선생이 이 책에서 맺는 결론이다. 책의 '시작하는 말'의 서두 부분은 이렇다.

 

"기독교는 2000년 동안 바울 신학을 추종해 왔다. 그리고 이것을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며 온 세계에 전파했다. 바울 신학은 예수를 유대 민족이 대망하던 메시아라고 주장함으로써 예수가 창출한 '생명문화공동체운동'을 곁길로 오도하였다. 그리고 다윗 왕조가 섬기는 일개 민족의 신을 유일신이라며 앞으로 올 메시아 왕국이 온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메시아 왕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자처했다. 어처구니없는 민족주의다."

 

<예수냐 바울이냐>는 예수와 바울을 비교하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밝힌다. 이 책은 바울이 예수의 정신을 왜곡했다고 보는 관점에서 쓰였다. 예수 선교의 성격은 섬김과 깨우침이다. 다윗 전통을 거부하며 권위주의를 배격한다. 예수가 추구한 하느님 나라 운동의 성격을 생명문화공동체운동으로 규정한다. 이 운동은 모두가 가는 큰길에서 돌아서서 좁은 길로 가는 것이다. 좁은 길이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이다.

 

반면에 바울은 율법과 유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유대인 중심주의에 서 있다. 다윗 왕조의 메시아 사상과 계시 사상이 주축을 이룬다. 하느님은 때가 되면 메시아를 보내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시온 산을 모든 멧부리 위에 치솟게 만드신다고 믿었다. 바울은 부활했다고 믿은 예수를 메시아로 만들고 로마 황제의 신학에 대항하는 신학을 만들었다. 바울에게는 갈릴래아에서 활동한 청년 예수는 관심이 없었다. 예수가 다윗 왕조의 전통에서 체화된,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그릇된 문화와 전통과 싸운 것과는 배치된다.

 

바울이 본 예수는 갈릴래아의 청년 예수가 아니다. 예수는 그를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도 거부하셨다. 메시아사상도 부정하셨다. 그는 삶을 살리는 진리를 진지하게 구하고 찾은 구도자로서 마침내 하느님과 하나 되어 악의 뿌리를 발견하고 이에 대치되는 생명의 길을 찾으신 분이다. 마침내는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악의 소굴로 채찍을 들고 들어가셨다. 예수는 각(覺)과 단(斷)을 하신 분이다.

 

바울은 예수를 대상화하여 구원은 거저 주는 은혜이니 인간은 믿음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믿음이란, 예수를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으로 믿고, 땅 위에 내려오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하느님이 그를 다시 살리시어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있게 하시다가 때가 이르면 다시 세상에 오시어 이 세상 나라들을 멸망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바울에게 이 세상은 장망성(將亡城)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바울이 전한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 다윗 왕조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예수는 재림하지 않았고, 바울의 대망(待望) 공동체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책은 여섯 마당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바울의 예수가 아니라 갈릴래아에서 민중과 함께 하던 청년 예수의 정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끝의 여섯째 마당이 '종교에서 생명문화공동체운동'이다. 저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는 예수의 말씀에서 새 술이란 사랑으로 얽힌 삶의 찬연(燦然)이요, 새 부대란 이 찬연을 담는 새로운 생명문화공동체로 본다. 권력이나 자본과 결탁한 기독교에서 탈피해 새로운 공동체 운동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미약하지만 이미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새로운 공동체 운동은 산업문화가 극에 이르러서 온 인류와 생태계까지 멸절하려는 엄청난 횡포를 보면서 일어나는 각성이다. 우리 역시 이 역사적 흐름을 주시하고 삶의 자세를 정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듀어런스  (0) 2022.03.08
예수 없는 예수 교회  (0) 2022.03.04
도올의 로마서 강해  (0) 2022.02.22
다읽(15) - 예수는 없다  (0) 2022.02.16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0) 2022.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