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우아한 가난의 시대

샌. 2022. 7. 24. 17:57

'우아'와 '가난'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가난과 단순한 삶을 예찬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짚었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가난해도 멋있고 풍요롭게 살고 싶어 하는 MZ 세대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자신이 소비하는 세대임을 당당하게 말한다. 부모 세대처럼 근검 절약만이 미덕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부유한 생활을 즐기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쳐도 눈앞의 케이크를 황홀하게 탐닉하는 것이 이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돈 버는 방법은 잘 몰라도 돈 쓰는 방법 하나는 귀신 같이 안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카르페 디엠'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가난할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는 걸 이미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를 즐기는 수밖에 없다.

 

고착화된 신분 사회로 변한 자본주의 체제가 젊은이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중 하나다. '영끌족'과는 또 다른 삶의 태도다. 영끌족은 자본주의 주류에 편입하려고 허망한 발버둥을 치지만 이들은 헛고생을 하지 않는다. 집을 소유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지금 주어진 시간을 자신을 위해 의미 있게 쓰려고 한다. 살얼음판 위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스케이트라도 기품 있게 타고 싶어 한다.

 

가난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다. 개인이 양극화와 가난을 물리적으로 극복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가난을 바라보는 태도는 변할 수 있다. MZ 세대에게 가난은 일상이다. '우아한 가난'은 이런 속에서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젊은 세대의 안쓰러운 분투다. 빈곤감이 디폴트된 사회에서 개인이 의연하게 살아갈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기 위한 혁명의 전사도 이젠 나올 수 없는 시대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는 김지선 작가가 썼다. 이 책을 통해 MZ 세대의 고뇌와 사고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귀여운 사치'가 상황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을까. 단지 표피적 위안에 불과하지 않을까. 개인이 모여 연대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파편화된 반짝임만 있을 뿐이다. 살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면서도 두꺼운 얼음판을 만드는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시대에나 청년은 사회 진보의 선봉에 섰다. 요사이는 즉물적이고 개인화된 모습이 자주 보여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