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샌. 2022. 7. 21. 11:04

요사이 책 읽기에 게을러졌다. 핑계를 대자면 장마철의 후덥지근한 날씨다. 아직 에어컨을 켤 정도는 아니지만 책에 집중하기에는 꿉꿉하다. 보통 일주일에 한두 권을 읽는데 이 책은 두 주일이 걸렸다. 그것도 듬성듬성 읽었다.

 

영국의 역사 평론가인 그레그 제너가 쓴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발상이 재미있다. 현대인의 하루 일상을 - 침대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 가고 아침을 먹고 몸을 씻고 입을 옷을 고르고 시간을 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시고 이를 닦고 침대에 들어가 자명종을 맞추는 것 -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관습화된 행위의 역사적 연원을 밝히는 내용이다. 현대인의 생활 방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힌 책이다.

 

우리의 일상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의식적으로 되풀이하면서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 전에 살고간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석기시대 조상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다 해도 우리의 일상 대부분을 낯설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들도 물로 몸을 씻었고 농작물과 짐승 고기를 먹었으며 볼일을 본 후 밑을 닦았고 옷을 입었으며, 애완동물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친구와 교류했으며 술에 취했고 남들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이를 쑤셨고 시간을 확인했으며 침대에서 잤다. 그들에게 전자제품 조작법만 알려 주면 현대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건강한 사회를 무너뜨린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이 즐기는 컴퓨터 게임의 잔인성과 셀카 세대의 도덕적 타락을 개탄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기성세대가 세태를 개탄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처음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었을 때 영국의 의사 중에는 시속 30km가 넘는 기차에 타면 뇌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19세기 후반 여성들 사이에 자전거가 유행했을 때도 의사들은 격렬한 활동 때문에 여성들의 얼굴이 미워져 '자전거 얼굴'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던 미국에서 전신이 지배적인 통신 수단으로 떠오를 때 한 의사는 책에서 인간은 한정된 신경 에너지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현대인은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려 신경 에너지가 너무도 빨리 고갈된다고 했다. 그 결과 신경쇠약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피로와 두통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변화에 저항하는 이런 염려는 셀 수 없이 많았다. AI에 대한 두려움도 같은 기우이길 기대한다.

 

책 내용 중에는 신기한 것도 있다. 중세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는 잠을 두 번으로 나누어 잤다고 한다. 4시간 동안 '첫잠'을 자고 깨서는 빈둥거리거나 요리, 청소, 기도, 부부관계를 하다가 두 번째 잠인 '아침잠'을 잤다. 어두운 긴 밤을 잠만 잘 수 없기에 이런 두 번의 잠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양치질이나 이빨 치료도 역사가 굉장히 오래 되었다. 수만 년 전 유골에서 충치 치료를 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충치의 원인인 '치아 벌레'를 잡기 위해 헛된 노고를 해야 했다. 치과의사들은 치아 벌레를 끄집어내기 위해 연기를 피웠다. 나도 어렸을 적에 치아 벌레를 잡는 아주머니한테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도구는 화로와 작은 그릇과 팥알이었다. 그릇을 귀에 대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아주머니가 말하는 치아 벌레가 붙어 있었다. 치아 벌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를 괴롭힌 허깨비였던가 보다.

 

현대적 치과 치료가 없어서 고생한 옛날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며 지은이는 말한다. "옛날이 좋다고 돌아가고 싶다면 치과 치료라는 한 가지 단어만 생각해 보라." 옳은 말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고통이나 빈곤의 절대량은 줄어들었지만 현대인은 상대적 결핍감에 시달리고 있다. 골고루 가난하고 아픈 시절에는 고통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으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안락한 환경이 되었다고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실생활 버전이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것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저자가 영국인이라서 서양 위주로 되어 있는 게 아쉽다. 우리 조상의 삶을 이런 식으로 재현해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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