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샌. 2022. 6. 19. 10:53

미국의 시인인 도널드 홀(Donald Hall)이 여든 이후에 쓴 에세이집이다. 처음 들어보는 시인이지만 나이에서 오는 노숙한 시인의 풍모가 글에서 느껴진다. 글은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면서 재미있다. 세상을 관조하는 마음의 여유가 부럽다.

 

지은이는 12세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70년 넘게 40권의 책을 출간했고 2006년에는 미국 계관시인의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2010년에는 예술가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국가예술훈장을 받았다. 상을 받게 된 사연이며 에피소드가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시인은 2018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이 책에 실린 글은 그가 말년에 쓴 에세이다. 사망하기 직전까지 책을 읽고 펜을 놓지 않았다.

 

책 제목으로 쓰인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은 노년에 든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오래 살게 되면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덤덤해지지 않을까. 그러나 늙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병마까지 찾아오면 생존하는 게 고통스러워진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걱정인 건 사실이다.

 

지은이가 노년의 삶과 죽음을 얘기하는 내용이다.

 

-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 내가 균형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을 걱정한다. 일어나고 앉는 게 힘들어지는 걸 걱정한다. 어제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아서 잠드는 사람이 아니다. 매일매일 게으름이 나를 무기력하게 한다. 앉은 채로 무엇을 할지 공상한다. 스웨터를 입을까, 아니면 파이 한 조각을 먹을까, 아니면 딸에게 전화를 할까, 어떨 땐 공상을 떨쳐버리고 일어서기도 한다.

 

- 어떤 친구들은 죽어버리고, 어떤 친구들은 치매에 걸려버리고, 어떤 친구들은 늙어서 침묵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 전체적으로 나는 똑같은 하루를 매일매일 산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잠깐 지루하다고 느낄 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아침이 오면 커피를 만들고 치아를 풀로 붙인다. 알약 네 개를 삼키고 메타무실을 마신 다음 수염을 훔친다. 삐꺼덕거리는 무릎 위로 지지대를 고정시키고 부종 위로 아플 정도로 꽉 끼는 스타킹을 신는다. 그다음에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신다. 낮 시간은 글쓰기, 낮잠 자기, 공상하기, 그리고 편지를 구술하는 새 지나간다. 하루하루가 지루할 일은 없다. 왜냐하면 매일 다른 것들을 읽고 쓰니까. 그리고 글 쓰는 작업이 날 지탱해주니까.

 

- 취침 시간도 기상 시간만큼 권태롭다. 아침에 마실 커피를 커피 머신에 집어넣고, 틀니를 빼서 담가놓고, 저녁때 먹는 알약들을 삼키고, 지지대를 풀고, 꽉 끼는 스타킹을 벗는다.

 

- 거울을 보면 풍성한 수염이 보인다. 내 뒤통수가 대머리라는 건 나는 전혀 모른다. 내가 서른이었을 때, 난 미래에 살았었다. 왜냐하면 현재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쉰 살, 예순 살이었을 땐 사랑과 일로 충만한 날들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노년은 의자에 앉아 있다. 저술을 약간 하고 점점 작아져간다. 기진함은 에너지를 막는다.

 

- 여든이 되어가면서 나의 하루는 좁아졌다. 그러는 게 당연하지만 말이다. 매일 같은 층에서만 생활하면서 냉동 식사류를 먹는다. 우편배달을 하는 루이스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우편물을 의자 위에 떨어뜨리고 간다. 난 비교적 잘 돌아다닌다. 침실, 욕실, 부엌, 창 옆에 놓인 새로 산 의자, 야구 경기를 시청할 때 쓰는 눕히고 올리는 전동의자 사이로 말이다. 경련을 일으키면서 바퀴가 넷 달린 수레를 밀어서 한 곳에서 다른 위치로 움직인다. 목을 부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편지를 쓰고, 낮잠을 자고, 에세이를 쓴다.

 

- 우리는 모두 정자가 난자에 침입하는 순간부터 죽기 시작한다. 내 나이에 이르게 되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어떨 땐 숙연하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는 건 별 볼 일 없는 일이라는데 동의한다.

 

- 이제 활자 속에서 말고는 나는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곧 죽을 거란 걸 아는 게 어쩌면 홀가분하다. 왜냐하면 다음 오르가슴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니까. 난 야망이 있었고 이제 그 야망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밖에는 말이다. 내 인생의 목표는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다. 과거에 나는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그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내게는 하루하루가 똑같다. 별 볼 일 없고 빨리 간다. 내 치아는 풀로 붙이기 무섭게 다시 떼어내는 것 같다. 일주일이나 점심 식사나 무료하기는 마찬가지다. 시간은 가고 나는 별 감흥이 없다. 지루함의 유일한 척도는 계절이다. 매년 똑같은 순서로 반복한다.

 

- 오늘날 노인 대부분이 이윤을 추구하는 말기암 환자용 다인실 침대에서 죽어간다. 그들이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은 바쁘다. 이미 자리 잡은 자신들의 일상의 순서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 자식은 부모의 기저귀를 갈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받고 기저귀를 갈아줄 여자에게 부모를 맡겼다. 나의 친구 린다는 대학 때 두 번의 여름방학을 '영원한 평화'라는 이름의 장소에서 보냈다. 3시부터 11시까지 근무였다. 환자들에게 밥을 먹이고 나면 틀니를 빼서 병에 담았다. 어느 날 밤, 린다는 한 여자의 틀니를 빼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잡아당기고, 당기고, 계속 당겼다. 치아 한 대가 피를 뚝뚝 흘리며 빠져나왔다.

 

90 가까이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지은이는 부와 명성을 누린 사람이다. 암과 뇌졸중을 겪었지만 네 명의 여자 도우미를 두고 안락한 노년을 보낼 수 있었다. 돈이 없고 존중도 받지 못하는 노년은 얼마나 비참할까. 현실이 참담한 건 그런 노년의 삶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글을 읽어보면 지은이는 타고난 글쟁이다. 글쓰기 재능에 더해서 유머와 장난기도 갖추고 있다. 더구나 말년까지 - 비록 신체 기능은 많이 상실했을지라도 - 정신의 명철함을 잃지 않았다. 부러울 뿐이다. 나는 지은이 같은 재주나 부, 명예가 없지만 바라는 것은 죽는 날까지 책을 잃고 지금처럼 블로그에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때가 되면 햇볕 잘 드는 창가에 편안한 의자 하나면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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