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 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 열심히 산다는 것 / 안도현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 이런 악다구니와 허장성세로 가득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지만 무엇을 위한 열심인 걸까. 내가 속 끓이며 고군분투하는 것이 할머니의 30원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내가 외친 날 선 목소리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 그렇게 아등바등 살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하고 해는 저문다. "됐습니다.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이것은 시인의 반어법이 아니던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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