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별빛 내시경 / 이원규

샌. 2022. 12. 18. 11:34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

도시를 꺼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반딧불이 은하수 가물가물 첫사랑의 눈빛

두 눈이 멀기 전에 캄캄한 곳으로 가자

예감의 더듬이 더 바스라지기 전에

오지 마을로 별빛 사냥을 가자

네온사인 가로등 텔레비전 핸드폰

별 볼일 없는 세계 최악의 빛 공해 나라

밝아도 너무 밝아 생각은 먹통이고

사랑과 혁명도 시청률이 다 정해져 있더라

한반도 밤의 위성사진이 캄캄한 곳

진안 봉화 영양 인제 개마고원 백두산

북간도의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 가보자

고흐의 별이 빛나는 아를 카페거리

생레미 생폴 정신병원도 너무 밝아졌더라

나는 왜 무엇으로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

동해선 종단열차를 타고 고성 원산 청진

북두칠성 삼태성에게 물어나 보자

울다가 휙 노려보던 당신의 눈초리

별빛을 사냥하다 슬그머니 별들의 포로가 되자

바이칼 호수에서 맨 처음 목욕재계하듯이

산꼭대기에서 훌훌 옷을 벗고

기막힌 정수리에서 용천혈까지 별빛 샤워를 하자

하룻밤 굶으며 위 내시경 검사를 받고

오금 저리도록 별의 별의 별의 별침을 맞아보자

 

- 별빛 내시경 / 이원규

 

 

얼마 전에 별 보러 갈 계획을 세웠었다. 천 미터 산 꼭대기 오지마을에서 별을 보고 아침에는 동해 바닷가에서 일출까지 볼 예정이었다. 카메라 가방을 챙겨놓고는 막상 출발은 못했다.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시골 고향에 내려가도 별을 보자면 이제는 마을을 벗어나 산 골짜기로 숨어야 한다. 골목마다 가로등이 늘어서서 별빛이 사그라진지 오래다. 언제쯤이었을까, 마당에 나가 잠깐만 눈을 감고 있어도 별이 쏟아져 내린 때가 있었다. 맨눈으로도 안드로메다은하가 선명히 보였다. 눈부신 문명이 걷어찬 것이 어디 별만이겠는가. 귀한 별을 만나자면 이젠 아주 많이 부지런해져야 한다.

 

시에 나오는 말대로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제대로 된 별하늘을 본 게 언제였는지. 병원은 가까이 있어야 한다면서 별은 멀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온갖 영양제를 흡입하면서 '별빛 내시경' '별빛 샤워' '벌침'이 영혼을 싱싱하게 살아있게 하는 원기소임은 모른다. 내가 이렇게 시들어져 가는 것도 별빛 내시경을 제때 받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은가. 오늘 밤에는 밖에 나가 희미해진 화성이라도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