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강아지풀처럼 그저 흔들릴 뿐 / 유하

샌. 2022. 12. 23. 10:21

내 사랑 그대를 사랑하기 위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대 사랑 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닙니다

우린 그저 하늘 아래 강아지풀처럼

흔들리고 흔들릴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에 풀씨 부딪듯

나 그대 눈빛 그렇게 만났습니다

 

내 사랑 그대를 위해

있는 것 아닙니다

천지가 강아지풀

어질게 키우지 않듯

내 마음속 그대 사랑

강아지풀처럼 그저 흔들리고

흔들릴 뿐입니다

 

- 강아지풀처럼 그저 흔들릴 뿐 / 유하

 

 

생물학적으로 볼 때 그저 짝을 찾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만 인간에게 사랑만큼 강렬한 감정도 없다. 특정 시기가 되면 사랑의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이성이 마비되고 눈에는 콩깍지가 씌어진다. 운명이라고 부르는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세상사는 슬프고 허무하다. 운명은 왜 그리 쉽게 우리를 버리고 떠나가는지, 어느 날 문득 '사랑의 지옥'에 갇힌 나를 발견하고 통곡한다.

 

남산 꼭대기에 있는 사랑의 자물쇠를 보면 솔직히 겁이 난다. 열쇠가 없는 자물쇠라니, 소유욕이고 속박에 다름 아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난무한다. 상처를 주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강아지풀이 흔들리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바람에 풀씨 부딪듯 그렇게 만났을 뿐이다. 나는 그대 사랑받기 위해서만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스쳐가는 나그네들,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 사랑으로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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