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힘들에 신실하고 조용히 둘러싸여
놀랍게 보호받고 위로받으며
나는 이날을 그대들과 더불어 살기를 위하고
그대들과 더불어 새로운 해를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
지나간 해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악한 날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른다.
아, 주님, 우리의 놀란 영혼에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구원을 주소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가득찬
쓰디쓴 고난의 무거운 잔을 주신다면
당신의 선하고 사랑스런 손으로부터
그것을 두려움 없이 감사히 받겠나이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세상에 대한 기쁨과
그 태양의 찬란한 빛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과거의 것을 기념하고자 하며
그때 우리의 삶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어둠 속으로 가져다준 양초들이
오늘 따뜻하게 밝게 타도록 하소서.
가능하면 우리를 다시 하나로 만드소서.
당신의 빛이 밤에 빛을 발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적막이 우리를 깊이 둘러쌀 때
저 세상을 가득 채운 소리를 듣자.
보이지 않게 우리 주위로 퍼져나가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의 찬미 소리를.
선한 세력들에 의해서 신실하고 조용히 감싸인 채
우리는 위로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을 기다린다.
하나님은 저녁과 아침 그리고 새날에도
분명히 우리 곁에 계신다.
- 선한 능력으로 / 본회퍼
김진욱 공수처장이 시무식 자리에서 본회퍼의 이 찬송가를 부르고 울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위공직자가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는 것은 경박하기 이를 데 없다. 당장 불교계의 항의가 있었고 바로 사과했다.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큰소리친 일이 떠오른다. 제발 기독교인들이 자기들 세계에만 갇히지 말고 타자를 배려하는 열린 마음을 갖길 바란다.
찬송가로 만들어진 가사는 일부 다르겠지만 이 시는 히틀러 암살 계획이 적발되어 감옥에 갇혀 있던 본회퍼(1906~1945)의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절대 신뢰와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본회퍼는 조만간 자신이 처형될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본회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굳은 신앙 안에 머물렀다. 당시는 히틀러의 광기가 극에 달하고 있을 때였다. "하나님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울부짖음이 그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공수처장이 어떤 감정이입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공직자는 자신의 업무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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