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오누이 / 김사인

샌. 2023. 1. 16. 15:17

57번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여섯 살쯤 됐을까 계집아이 앞세우고

두어 살 더 먹었을 머스마 하나이 차에 타는데

꼬무락꼬무락 주머니 뒤져 버스표 두 장 내고

동생 손 끌어다 의자 등을 쥐어주고

저는 건드렁 손잡이에 겨우 매달린다

빈 자리 하나 나니 동생 데려다 앉히고

작은 것은 안으로 바싹 당겨 앉으며

'오빠 여기 앉아' 비운 자리 주먹으로 탕탕 때린다

'됐어' 오래비자리는 짐짓 퉁생이를 놓고

차가 급히 설 때마다 걱정스레 동생을 바라보는데

계집애는 앞 등받이 두 손으로 꼭 잡고

'나 잘하지' 하는 얼굴로 오래비 올려다본다

 

안 보는 척 보고 있자니

하, 그 모양 이뻐

어린 자식 버리고 간 채아무개 추도식에 가

술한테만 화풀이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멀쩡하던 눈에

그것들 보니

눈물 핑 돈다

 

- 오누이 / 김사인

 

 

가슴이 뭉클해지는 풍경을 시인은 펼쳐준다. 버스표를 내고 버스를 타던 시절이니 90년대쯤일까, 어린 두 오누이의 다정한 모습이 따스하면서도 애틋하다.

 

둘은 어디에 갔다오는 길일까. 외할머니 집에 다녀오는 걸까, 아니면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를 만나고 오는 걸까. 아직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만 동생 앞에서 오래비는 저절로 의젓해진다. 요사이 경기 불황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많아졌다. 오늘은 어린 자식을 데리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엄마의 기사에 또 절망한다. 그러나 TV를 켜면 별세상이다. 먹방, 해외여행, 상류층 드라마 등 화려한 영상이 눈을 어지럽힌다.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밖에 나서지 않으니 눈에 띄지 않는다. 한숨과 통곡 소리는 밖으로 새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쩌다 듣는 슬픈 뉴스에 혀를 몇 번 찰 뿐 이내 잊고서 바보상자를 마주보며 낄낄거린다. 세상은 환상들이 난무하는 무대 같다. 하긴 그렇게라도 취해야지, 제정신으로 이 세상을 어찌 살아낼 수 있겠는가.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깨비 상자 / 김창완  (1) 2023.02.04
떡국 한 그릇 / 박남준  (0) 2023.01.24
선한 능력으로 / 본회퍼  (0) 2023.01.08
열심히 산다는 것 / 안도현  (1) 2022.12.31
강아지풀처럼 그저 흔들릴 뿐 / 유하  (0) 202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