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글 수가 7,000개를 기록했다. 블로그를 처음 개설한 날이 2003년 9월 12일이니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었다. 날수로는 정확히 7,090일째다. 남에게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천 단위의 소중한 기념일이다.
20년 전에 나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밤골 생활이 여의치 못해서 방황하고 있을 때였다. 세상은 등을 돌린 채 나를 외면했고, 진심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게 블로그였다. 온라인 공간에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위로해 나갔다. 누구에게 드러내거나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블로그는 상상한 이상으로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던 포털이 없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두 번이나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한미르에서 파란을 거쳐 지금의 티스토리에 이르렀다. 이사할 때마다 소동을 겪었고 전의 내용이 온전히 복원되지 못했다.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현재의 티스토리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수익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유료화라도 해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해줬으면 좋겠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 뭘 끄적거리든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리자고 나에게 약속했다. 무엇보다 그 약속을 20년 가까이 지켜왔다는 것이 뿌듯하다. 이제 블로그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시나 책을 꾸준히 읽고, 꽃과 새를 가까이하고,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늘 카메라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블로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블로그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원동력이다.
글솜씨가 이만큼이나 된 것도 오로지 블로그 덕분이다. 아마 내 혼자만 보는 일기였다면 글쓰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블로그는 아무래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내용을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심적 부담을 느끼는 점이 일기와는 다르다. 어느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 작가는 글을 잘 쓰고 싶으면 10년 동안 매일 일기를 써보라고 했다. 내 경우에는 열심히 일기를 써봤지만 별 진척이 없었다. 그러나 블로그는 달랐다. 이 역시 블로그가 준 선물이다.
블로그의 기능 중 하나가 글을 쓰고 정보를 공유하며 타인과 소통하는 데에 있다. 이런 점에서는 나는 미흡하다. 대부분의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를 바란다.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글을 알리려고 애쓴다. 성격 탓인지 나는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는 하지 못한다. 방문자수에도 별 관심이 없다. 나에게 블로그는 일상을 따라 명멸하는 생각과 느낌을 적어두는 자기만족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향후 블로그 글 수가 10,000개에는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까지 가는 데도 앞으로 10년은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어야 할 정도로 이젠 인생 말년에 접어들었다. 바라건대 건강이 유지되어서, 자연을 걷고, 책 읽고, 그리고 자족(自足)하는 블로그 놀이를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것이 혼자서도 넉넉히 인생을 즐기는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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