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술이 고픈 날

샌. 2023. 1. 9. 10:07

답답하고 짜증이 이는 날이 있다. 이런 때는 밖에 나가 걸음을 하는 것이 특효약이다. 걷는다는 단조로운 몸의 움직임이 얽힌 마음을 풀어준다. 어제도 그랬다. 방에 가만있다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미세먼지가 빨간색으로 경고를 했지만 밖으로 나섰다.

 

걸으면서 서로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말한다. 뭐 그런 칠칠치 못한 놈들이 있냐구. 넌 참 운도 없구나. 네가 화낼만하다니까. 다른 하나는 말한다. 잘 봐, 그런 게 아니잖아. 화가 어디에서 온 거니.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답이 없다고. 둘이서 실컷 싸우게 놔둔다. 얼마 지나면 자연스레 한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또한 내 안의 어린아이도 보인다. 내 의식의 심층부에는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있어 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어리광을 부리고 인정을 받지 못해 안달이다. 보이면 달래줄 수 있다. 억누를수록 얘는 힘을 키우고 언젠가는 복수한다. 걸음은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첫걸음은 제대로 보고 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다.

 

내 안에 어린아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나운 짐승도 산다. 도대체 몇 종류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짐승은 나이가 들면서 많이 온순해졌다. 지금은 짐승보다 어린아이가 더 무섭다. 그 아이가 수시로 부리는 막무가내 심술은 감당하기 힘들다.

 

길거리 편의점 야외 탁자에서 한 중년 남자가 생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일요일 대낮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 없었다. 중년 사내의 심사를 헤아려보며 나도 불현듯 술이 고파왔다. 꿀꿀한 기분을 푸는 자기 위안에는 사실 술만 한 게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지금 금주 150일째다. 여기서 허무하게 무너질 수는 없다. 알코올의 힘보다는 맨정신으로 버텨나가기로 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인간 번뇌의 대부분은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다. 제 성질을 못 이겨서 안달복달할 뿐이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안으로 눈을 돌리면 그것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보인다. 어제의 경우는 내 안에 있는 철부지의 투정이었다. 누구나 이런 철부지/어린아이를 데리고 살아간다. 지혜롭다는 것은 내 안의 어린아이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내 안의 어린아이는 에고(ego)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어제의 걸음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은근히 지켜보며 달래는 나름의 의식이었다. 술이 상당히 고팠지만 외면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술은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게 만든다. 순간의 마취 작용은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술 한 잔의 낭만까지 부인하지는 않겠다. A를 얻고 B를 잃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단순함과 복잡함이 뒤얽힌 어제의 집 주변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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