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샌. 2023. 3. 11. 17:08

손주가 오면 집안에 하하 호호 웃음꽃이 핀다. 보통 때는 웃을 일이 거의 없다. 한 번도 웃지 않고 지내는 날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파안대소를 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다. 늙어갈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얼굴 표정은 굳어진다. 어른과 어린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깔깔거리며 재미있어한다. 호기심이 가득하니 뭐든지 재미있는 거리를 만들어낸다. 노인이 되면 매사에 심드렁해진다. 마치 딱딱하게 말라가는 고목 등걸 같다.

 

그래도 자주 웃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아내는 깔깔거리며 소리 내어 웃는다. 예능 프로인 것 같은데 뭐 그런 걸 보느냐고 나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내는 웃을 일이 없는데 이런 거라도 보면서 웃어야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한다. 맨날 책을 본들 어디에 써먹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확실히 남자보다는 여자가 잘 웃고 잘 운다.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예전에 '개그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러 코너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렛 잇 비'를 좋아했다. 비틀즈가 부른 '렛 잇 비'를 개사한 노래로 회사원의 애환을 다룬 코너였다. 애잔하고 짠한 사연들에 공감하며 울고 웃었다. 나는 그때 교직에 있었는데 회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교직은 상사나 진급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대신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싸움박질을 해야 했다. 힘든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렛 잇 비'는 잔잔한 웃음과 함께 페이소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네 사람의 개그맨이 나왔는데 홍일점이었던 박은영 씨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렛 잇 비'는 이런 노래로 마무리를 했다. "여러분 힘내요! 여러분 웃어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진다고도 한다. 웃는 얼굴에는 침을 뱉지 못한다. 힘들수록 웃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거기서 유머가 나오면서 슬픔을 견뎌내는 힘이 생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도 있다. '렛 잇 비'가 노래하는 것처럼 힘들고 지쳐도 통 크게 웃어넘길 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보면 완고하고 무뚝뚝한 티가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노인 얼굴이다. 손주는 가끔 내 찡그린 얼굴을 흉내 내며 웃는다.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추론이 가능하다. 내 관상만 보면 결코 잘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산전수전 다 겪었으면서도 하회탈 같은 표정을 가진 노인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동년배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찡그리고 딱딱한 표정이다. 잔뜩 화가 난 얼굴도 있다. 살벌한 경쟁 사회를 살아온 흔적이 아닐까. 반면에 서양 노인들에게서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있는 얼굴을 흔히 본다.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국가일수록 얼굴에 삶의 여유가 담겨 있다. 우리의 굳은 획일적인 얼굴은 개인보다는 사회의 책임이 더 큰 것 같다.

 

자주 웃어야 웃는 근육이 발달한다고 한다. 나도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실없는 웃음이라도 지어야 할까 보다. 뉴스나 정치 프로그램은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지니 사양하겠다. TV에서 코미디 프로가 사라진 지 한참 되었다. 다행히 개콘이 다시 방영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바라건대 우리 같은 노년 세대도 신나게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시름을 잊고 활짝 웃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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