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에 제작된 브라질 정치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넷플릭스에 올려져 있다. 2002년에 룰라가 군사 독재를 물아내고 브라질의 대통령이 된 때로부터, 룰라의 후계자였던 지우미가 탄핵되고 부패 스캔들로 룰라가 구속된 2018년의 상황까지를 다룬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겹쳐보이면서 먼 남의 나라 일 같지 않았다.
브라질은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가 세 번째로 당선되었지만 극우인 보우소나루와는 1.8% 차이였다. 보우소나루의 극력 지지층에서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최근에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식이면 룰라가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파 기득권층이 다시 어떤 음모를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치 구조상 안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02년에 민주주의를 회복한 룰라가 대통령으로 집권했을 때는 인기가 대단했다. 노동자에서 대통령이 된 인생 스토리 뿐만 아니라 서민을 위한 소득 재분배 정책으로 브라질 경제도 살아났다. 연임하고 퇴임할 때는 지지율이 80%를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후임 대통령인 지우마 집권기인 2013년에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브라질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한다고 느낀 기득권층에서 대통령과 룰라를 제거하기 위한 표적수사의 혐의가 짙었다. 일종의 정치 쿠데타였다. 경제마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민심은 떠나갔다.
양 극단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이 다큐멘터리는 보여준다. SNS를 통해 가짜뉴스가 범람하면서 공동체는 화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분열한다. 브라질처럼 공고한 기득권 카르텔은 민주주의를 희생하더라도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려 한다. 룰라를 비롯한 좌파 세력한테도 실책이 있었다. 전통적인 부패 구조에 편승해서 국가를 운영하려고 한 점이다. 나중에 룰라는 철저한 사회 개혁을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실수로 꼽았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배 계급의 아성을 깨뜨리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내용 중에 부자의 상징인 워렌 버핏이 한 말이 나온다. "계급 전쟁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부자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고 , 이기고 있다." 솔직하고 무시무시한 발언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브라질의 진보적 언론인이 자신의 시각에서 제작한 것이다. 반대 진영이라면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룰라는 운 좋게 재기해서 세 번째 브라질 대통령이 되었다. 제발 브라질을 잘 이끌어서 사회를 안정시키고 다시 한 번 글로벌 좌파 스타로서의 옛 명성을 되찾길 바란다. 룰라가 당선된 것이 브라질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기의 민주주의'를 보면서 우리의 정치 상황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연상되는 정치 지도자도 여럿 있었다. 두 나라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양 극단으로 이념이 갈라져서 상대를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폭력성이다. 화해, 소통, 협치, 국민 통합 같은 가치가 너무나 아쉬운 요즈음이다. '위기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정치 다큐멘터리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천년의 여운 (0) | 2023.03.30 |
---|---|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0) | 2023.03.24 |
새와 사람 (0) | 2023.03.16 |
나는 신이다 (0) | 2023.03.12 |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 (0) | 2023.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