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

샌. 2023. 3. 24. 11:41

최근 IPCC(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각국 정부에 보내는 보고서를 채택했는데 내용이 사뭇 심각하다. 앞으로 10년 안에 전 세계가 적극적으로 기후 행동에 나서 않으면 기후 위기 임계점을 넘어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촌은 양동이에 물이 가득 차 한 방울의 물만 떨어져도 기후 위기라는 물이 넘쳐버리는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현재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은 10년 전보다 12% 증가했고, 이런 추세라면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지구 기온이 1.5℃ 상승하게 된다는 예측이다. 과거 100년 동안 1.1℃ 상승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다. 이미 해수면 상승이나 극지의 빙상 붕괴, 생물 다양성의 손실 등 일부 변화는 불가피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고 한다.

 

<뜨거운 미래에 보내는 편지>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책이다. 후세에 전하는 편지 형식으로 환경운동가인 미국의 대니얼 셰럴이 썼다. 원제는 'Warmth: Coming of Age at the End of Our World'다. 

 

지구 환경면이나 정보 기술면에서 우리는 지금 대변혁기를 살고 있다. 오래 지속된 한 시대가 가고 전혀 예측하거나 대비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과도기다. 이런 시대를 경험하는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우리 다음이나 다다음 세대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이 될지 나쁜 세상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미래를 비관하게 된다.

 

지구온난화만 해도 우리는 이미 무감각해졌다. 아무리 통계 수치를 제시하며 경고해도 '뭐, 그런가 보다'라고 심드렁하게 넘어간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래에 대한 '애도'밖에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셰럴은 미래를 느끼는 감각이 너무나 예민한 사람인 것 같다. 기후 변화로 인한 절실한 위기감이 그를 환경운동가로 만들었고, '그 문제'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그 문제'라고 칭함으로써 미래에 펼쳐질 재앙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지은이가 속한 'NY리뉴스'에서는 화석 연료 업계와 싸우고 정부나 입법부에 압력을 가하는 행동을 한다. 그들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50%로 늘리고, 2050년에는 100%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박함에서다.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환경 위기가 너무 과장됐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파스칼의 내기가 떠오른다. 신을 안 믿었다가 만약 신이 존재하게 된다면 그는 전부를 잃게 된다. 반면에 신을 믿은 사람은 나중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져도 크게 밑질 것은 없다.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이런 비유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다. 일부 환경운동가에게만 맡기고 무관심하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손주나 그 뒷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죄를 짓는 셈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잠깐 세상이 달라진 적이 있었지. 하늘이 맑아지고, 사무실은 텅텅 비고, 항공 여행이 급감했고, 세계 탄소 배출량도 줄었지. 자취를 감췄던 짐승들이 마치 의무 격리에서 해제된 양 도시와 교외에 출몰하기도 했지. 그런데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잃어버린 3년을 찾기 위해 더 극성을 부리는 것 같다. '보복' 여행, '보복' 소비라는 살벌한 말까지 등장한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가 배운 게 무엇인지 절망감만 든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추악한 이기심일 뿐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

 

지구를 살리는 길에는 '덜 하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덜 하기'의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줄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는 불가능한 꿈인지 모른다.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마감기한이 느슨하고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는 그런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면 솔직히 기분 좋아. 지금보다 더 지루하고, 더 조용하고, 우연한 일도 더 많이 겪겠지. 어느 날 일어나보니 일정이 하나도 없는 거야. 그럼 차를 끓여 마실 수도 있고, 어슬렁어슬렁 나가 친구를 만날 수도 있어. 가는 길에 다른 사람도 많이 마주칠 거야. 같은 이유로 밖에 나온 사람들이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느긋하게 걷다가 간간이 멈춰 서서 운동화 끈을 고쳐 묶거나 모르는 이와 담소를 나누겠지.

이 다른 세상에서는 게으름이 최고의 미덕일 거야. 밭 갈기, 브랜드 이미지 만들기, 명성 쌓기 따위 집어치워. 시간을 쌓아놓고 못 쓰는 돈처럼 사용하는 행태도 그만두라 해. 청교도 윤리, 그 기질적 피학성도 개나 줘버려. 불품없는 세간과 서출 티가 나는 성(姓)만 가지고 엘리스섬에 도착한 내 유대계 조상이 억지로 떠안다시피 물려받아 나에게 고스란히 전승한 그놈의 청교도 정신. 아우슈비츠 수용소 대문에도 똑같은 거짓말이 새겨져 있잖아.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당연히 노동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아. 그 문구 아래를 지나간 너희 조상들은 샤워실에 쳐넣어져 눈에 안 보이는 가스를 마시고 서서히 죽어갔어. 그런데도 내 안의 일부는 땀 흘려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여전히 믿어. 다른 종류의 안 보이는 가스가 우리 모두가 마시는 공기 중에 퍼져 치명적 농도에 이르고 있는데도 그렇게 믿고 있어.

빗나간 믿음이라는 걸 아는데도 여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너무 많이 일해서, 글자 그대로 과열한 경제로 인해 생겨난 문제 중 하나를 마주했을 때 내가 유일하게 취할 수 있는 반응이 그냥 일을 더 하는 것인 이유도 바로 그거야. 그 또다른 가책의 한 갈래, 그것이 내는 끈질긴 목소리가 이렇게 물어. 정작 너 자신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면서 어떻게 경제가 속도를 늦추기를 기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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