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

샌. 2023. 6. 3. 10:36

역사학자 김영수 선생이 사마천의 삶을 재조명한 책으로 총 세 권 중 첫째 권이다. 제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쉽게 읽히면서도 고증에 충실한 내용이 탄탄하다. 선생은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면서 문헌 속에서만이 아닌 현장의 생생한 사마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마천의 일생에는 두 번의 변혁기가 있다. 첫 번째는 20세 때부터 시작한 역사 탐방 여행이다. 사마천은 20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역사 자료를 수집했다. 특히 1차 여행은 2년 동안 12,000km를 이동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한다(讀萬券書 行萬里路)'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두 번째는 49세 때 이릉의 화로 당하게 된 궁형이다. 사마천은 BC 99년에 흉노족에 투항한 장군인 이릉을 변호했다가 한무제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생명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궁형을 자초했다. 명예를 중시하는 사대부로서는 너무나 치욕적인 일이었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과 비통, 울분에 차 있었을 것이다. <사기>는 피눈물 속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사마천은 글로 후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변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책에는 궁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생각 이상으로 참혹하다. 생식기를 잘린 뒤 후유증으로 2/3는 폐인이 되거나 사망한다고 한다. 요독증이나 세균 감염 때문이다. 사마천은 생존 확률이 희박한 가운데서 치욕적인 선택을 했다. 궁형을 당한 사람은 어둡고 따뜻한 잠실(누에 치는 방)에 보내져 요양을 하는데, 옛 기록에 '잠실에 보내졌다'는 표현은 궁형을 당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궁형마저 중국의 다른 혹형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았으니 현대의 형벌 제도 이전의 처형 방법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알 수 있다.

 

여행이 사마천 사고의 폭을 넓혔다면, 궁형은 깊이를 심화시켰을 것이다. 역사를 보는 넓고 깊어진 눈으로 <사기>라는 대작을 쓸 수 있었다. 고난은 이렇듯 인간을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게 한다. 기전체라는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채택한 것도 사마천의 삶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사기>는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의 다섯 부분에 총 130편으로 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 읽기가 끝나면 이어서 <사기>를 읽을 예정이다. 역사를 통해 인생사를 바라본 사마천의 정신을 느껴보고 싶다. 사마천이 <사기>을 저술할 때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발분저술(發憤著述)'이다. '발분'은 '울분을 표출한다'는 의미다. 사마천은 자신의 울분을 <사기> 속에 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의 표현대로 종내 '일가의 문장을 이루었다 [成一家之言]'.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2) 2023.06.16
자본주의의 적  (0) 2023.06.09
타인의 마음  (0) 2023.05.26
아버지의 해방일지  (0) 2023.05.20
숨결이 바람 될 때  (0)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