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샌. 2023. 6. 16. 11:27

김형석 선생은 1920년생이니 103세가 되신다. 여전히 저술과 강연 등의 활동을 하는 노익장이 대단하시다. 선생은 우리들 대화 자리에서 노년의 본보기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분이시다. 물론 이런 하늘이 내린 혜택을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은 선생이 행복을 소재로 발표한 글을 모은 책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사소한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선생의 글은 평이하고 담백하다. 선생의 성격과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삶의 기본이 되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초등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에 담겨 있다.

 

'약간 우울한 이야기'라는 글에서 선생은 늙는다는 것은 생활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나이가 들 수록 사회 공간은 없어지고, 활동 영역이 가정 공간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정 공간에서도 점점 소외된다. 60이 넘으니까 가족이 관심조차 없어지더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자신이 먼저 "여보, 나 왔어요"라고 말하면 "벌써 왔어요? 그렇게 갈 데가 없어요?"라고 마누라가 대꾸한다는 것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공간을 넓혀가다가 점점 그 주어진 공간에서 추방당하고 사회 공간에서 사라져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를 봐도 공감이 된다.

 

선생은 소년 시절에 몸이 유약해서 오래 살지 못 할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인으로 살고 있다. 선생의 건강 유지 비결은 절제된 삶에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선생은 '일'을 강조한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늙어갈수록 활동 공간이 줄어든다고 했는데 우리의 삶이 공간의 크고 작음에서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무엇을 남겼느냐다. 제약된 공간에서 무한의 의미를 남기면서 사는 것인 인생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는 것이 좋은가'에서는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남에게 도움을 줄 자신과 능력이 사라지면 죽음을 맞는 것이 낫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옮긴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며, 건강만 하면 된다는 자기중심의 생각보다는 작은 도움이라도 주면서 살자는 정성과 노력이 더 귀한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신체적 건강과 같은 그릇이 목적이 아니라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는가 하는 것이겠다.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일하고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장수는 축복받은 것이며, 경하해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생사는 인간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생가대로 된다면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제는 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죽어도 좋겠다고 스스로 판단할 사람도 없다. 죽음은 언제나 타의와 타력에 의한 종말인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일하고, 남에게 기쁨과 도움을 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소원은 누구나 지닐 수 있는 값진 가능성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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