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에 읽은 책인데 차일피일하다가 이제야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정리해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읽고 흘려버리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내용을 재확인하는 작업만으로도 책을 두 번 읽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의 원제는 '뇌에 관한 7과 1/2의 강의[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이다. 심리학자며 뇌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L. P. Barrett)이 썼다. 구성은 제목처럼 7개의 주 강의와 한 개의 보충 강의로 되어 있다. 200페이지 남짓으로 분량이 작아도 내용은 알찬 책이다.
우선 뇌의 정의가 새로웠다.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이 아니다. 뇌의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한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이다. 즉, 뇌는 몸을 제어해 잘 살아 있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여기에서 '신체예산'이라는 용어와 '예측'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나온다.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만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뇌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신체예산에 관한 한 예측은 반응을 앞지른다. 포식자의 공격에 앞서 움직일 준비를 한 생물들은 포식자가 덮치기를 기다린 생물보다 생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미래에 필요한 예측을 과거의 경험에서 얻는다. 인간만 보면 달아날 준비를 하는 동물들도 예측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지은이는 전쟁터에 나간 한 병사의 예를 든다. 그 병사는 멀리서 소떼를 몰고 지나가는 아이를 적국의 병사들로 착각하고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우리 뇌는 시각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나의 생존을 위해 예측을 먼저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과 우리 뇌가 구성한 것의 조합이라는 지은이의 설명이 타당해 보였다. 보이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실제는 아니다. 어쩌면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인지 모른다. 목 말랐을 때 물 한 잔을 마시면 금방 갈증이 줄어든다. 실제로 물이 혈류에 도달하려면 20분 정도가 걸리는데, 물을 마시고 몇 초만에 갈증이 해소될 리는 없다. 이때 갈증이 해소되었다고 느낀 원인이 바로 예측이다. 뇌는 마시고 삼키는 행위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동시에 물을 마시면 느끼게 되는 결과를 예상해서 수분이 혈액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훨씬 전에 갈증을 덜 느끼게 한다.
뇌는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이미 행동들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는 것이다. 뇌는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을 기반으로 다음에 이루어질 일련의 행동을 개시하며,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인식 없이 이루어진다. 즉, 우리의 행동은 기억과 환경의 제어를 받는다. 사실 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의 유무 문제까지 닿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각자의 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뇌가 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예측을 만든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인 탓이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되는 것이고, 그 예측들은 자동으로 우리가 앞으로 할 행동을 이끌어낸다.
지은이는 뇌에 관한 기존의 잘못된 지식도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삼위일체의 뇌와 좌우뇌의 기능 구분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인간의 뇌는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변연계), 대뇌피질의 세 층으로 되어 있다고 알고 있었다. 인간의 뇌가 이런 선형적 진화를 한 게 아니라 모든 포유류의 뇌는 하나의 제조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커다란 대뇌피질에 대해서도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우리 뇌는 세 개가 아니라 하나다.
구조적으로 뇌는 1280억 개의 신경세포가 거대하고 유연하게 연결된 네트워크(신경망)라 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 구조를 통해 뇌가 마음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천 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는 전기신호로 서로 통신하면서 시냅스에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화학물질은 다른 나뭇가지의 신경세포를 자극해 발화하며 정보를 전달한다. 이런 배선을 통해 뇌는 작동한다. 지은이는 현대의 공항 시스템을 비유로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쉽게 설명한다.
책에는 처음 접하는 용어나 개념이 나온다. '정동(affect)'도 그중 하나다. 뇌는 우리 몸으로부터 정동을 항상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정동은 감정이 아니고, 감정의 근원이 되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뇌는 매 순간 우리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요약하고, 우리는 그 요약을 정동으로 느낀다. 정동이 우리의 신체예산 활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뇌과학자들이 탐구하고 있다고 한다. 신체 신호가 정신적 느낌으로 전환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의식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정동의 비밀이 드러나면 질병에 대한 이해도 한 차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뇌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가 일반들을 위해 뇌에 대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뇌에 관한 새로운 지식이 독서의 재미를 더해준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1세기 뇌과학의 정수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책을 덮으며 나를 염려하고 간수해 주는 내 뇌가 무척 고맙고 갸륵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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