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산업사회와 그 미래

샌. 2023. 7. 1. 11:09

지난달에 '유나바머(UNABOMBER)'가 미국 교도소에서 81세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테어도르 카진스키(T. J. Kaczynski)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편물 폭탄 테러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오래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보도가 되며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기억이 난다. 유나버머[UNABOMBER = University + Airline + Bomber]란 그가 주로 대학과 항공사에 소포로 포장된 폭탄을 보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여섯 차례에 걸친 폭탄 테로로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유나바머는 IQ 167의 천재였다. 16세에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서 수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교수가 되었다. 어떤 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20대 후반에 그는 갑자기 교수직을 그만두고 몬태나주에서 문명을 버린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세 평짜리 작은 움막이었다. 현대 산업 시스템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가진 그는 비밀리에 폭탄을 제조해서 주로 컴퓨터를 비롯한 테크놀로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벌인다.

 

그는 검거되기 전에 뉴욕 타임즈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선언문을 신문에 실어준다면 더 이상 인명 살상을 하지 않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세상에 공개된 글이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aty and Its Future)'이다. 이 글을 본 그의 동생이 형의 필체임을 알아보고 신고해서 유나바머는 1996년에 체포되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관심이 생겨 박영률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 <산업사회와 그 미래>을 읽었고, 넷플릭스에 올려져 있는 다큐멘터리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를 보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주장을 했는지 대략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선언문에서 제일 자주 접하는 단어가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이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기술 문명 시스템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는데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필연적으로 낳게 된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동을 치밀하게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선물하지만 동시에 소외와 인간관계의 단절을 생기게 한다. 심하게 말하면 산업 체제에 의한 인류의 노예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시스템은 길들여진 또는 사회화된 인간을 원한다. 현대의 정신 건강도 개인이 체제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가, 그러면서도 아무런 스트레스의 조짐을 보여주지 않는가로 규정할 수 있다. 유나바머는 심리적 치료나 항우울제 처방 같은 것도 체제 종속적 인간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본다. 통제된 인간은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고 외부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은 제대로 된 권력 과정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광고나 마케팅 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유나바머가 좌파주의도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공장은 무너뜨려야 하고 기술 서적은 불태워버려야 한다." 유나바머의 도발적인 주장이다. 산업 시스템이 자정할 능력은 없고 대중도 마취되어 있으니 일부 깨어 있는 사람에 의한 혁명에 의해서만 이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방법도 불사해야 한다. 그의 폭탄 테러도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순교자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현대 테크놀로지와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것만큼 되찾고 싶어하는 것이 '순수한 자연(Wild Nature)'과 '인간성( Human Nature)'이다. '순수한 자연'이란 인간의 관리에서 벗어나 있고 인간의 간섭 및 통제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생물들과 지구가 조화롭게 기능을 수행하는 자연이다. '인간성' 역시 조직 사회의 규제를 받지 않는, 그리고 우연, 자유의지,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조화롭게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유나바머의 사상은 동양의 노장사상과 닮아 있다고 느낀다. 다만 노장사상이 개인의 깨달음에 중점을 둔다면 유나바머는 사회 구조를 변혁하는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라는 다큐멘터리에 보면 그가 폭력적이 된 데는 개인적인 분노와 복수심이었지 이타적인 동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숲 속에서 조용한 은둔 생활을 할 때 벌목이라든가 산책로가 파괴되는 등 자연훼손이 있었다. 이때 신경질적인 반응이 있었다고 이웃은 전한다. 결국 그는 산업 시스템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확신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무차별 살상이 용서받을 수는 없다.

 

유나바머가 주장하는 내용은 상당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지 모른다. 유나바머의 경고를 한 미치광이의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류에게 있어 산업혁명과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산업혁명 덕분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평균수명이 대폭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다. 심리적 고통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으며(제3세계의 경우에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 자연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 앞으로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할 때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사라져버릴 것이고, 자연은 더욱 극심하게 파괴될 것이다. 또한 추측컨대 사회적 혼란과 심리적 고통도 훨씬 더 극심해질 것이며, 선진국에서도 역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 산업-테크놀로지 사회 체제는 살아남을 수도 있고 붕괴될 수도 있다. 이 체제가 살아남을 경우, 어쩌면 마지막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낮은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길고 몹시 고통스러운 적응기를 거친 후의 일일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인류와 수많은 생물들은 기계적 생산 제품 또는 사회라는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만일 이 체제가 살아남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체제를 개혁 또는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박탈당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이 체제가 붕괴될 경우에도 그 결과는 여전히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체제가 거대해질수록 그 붕괴로 인한 결과도 더욱 참혹해진다. 그러니 이 체제가 어차피 붕괴될 것이라면,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산업 체제에 항거하는 혁명을 주장한다. 이 혁명에선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고,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산업 체제를 증오하는 이들이 체제에 항거하는 혁명의 길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을 아주 개략적인 수준에서 제시할 수는 있다. 이 혁명은 결코 정치적 혁명이어서는 안 된다. 혁명의 목표는 정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 사회의 경제적, 테크놀로지적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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