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은 지 꼭 1년이 되었다. 그동안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으니 철저하게 지킨 셈이다. 50년이 넘는 주사(酒史)를 칼로 무 베듯 단절한 결행이었다.
가끔 폭주(暴酒)하는 게 문제였다. 젊었다면 영웅담이 될 수도 있겠으나, 늙어서 부리는 주취(酒醉)는 꼴불견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젠가 녹음된 술 취한 내 목소리를 듣고 크게 쇼크를 받은 적이 있다. 광마(狂馬)를 본 것이다.
금주한 뒤 나타난 육체적 변화는 속/위장이 편해진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수시로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되는 증상에 시달려 왔다. 주원인이 스트레스와 알코올이었다. 두 가지가 제거되니 제일 반기는 부위가 위장인 것 같다.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증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신경 쓰지 않게 침묵하는 위장은 나로서는 생경한 경험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금주의 의미는 충분히 찾았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자동으로 다이어트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술을 마시면 아무래도 고기나 기름기 있는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과식을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럴 위험성이 없어졌다. 현재 내 몸무게는 쾌적한 수준을 안정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 역시 전에 없던 일이다.
아내는 말한다. 당신이 술을 안 하니 재미가 없어졌다고. 그동안 둘이 마주앉아 홀짝이는 즐거움이 있었다. 비가 온다고, 고기반찬이 있다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우울하다고, 이유는 많았다. 부부 대화의 상당 부분이 술과 함께 할 때였다. 그런 점은 아쉽다.
친구들과 술을 나누며 가끔 헛소리도 하고 껄껄 웃는 재미를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따스한 봄바람 같다가 어느 순간 폭풍으로 돌변하는 게 술이다. 그 경계를 지켜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예 시작을 안 하려는 것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한다. 손익계산서를 따져볼 때 내 선택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년 동안 유지해 왔으면 이젠 술과 멀어진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다 할 수 있다. 담배는 50대에 끊었고, 술은 70대에 들어서 끊게 되었다. 둘 모두 나의 생애에서 둘도 없는 친구들이었다. 가끔 난폭하긴 했으나 과거에 이 친구들로부터 받은 위안을 어찌 계량할 수 있으랴. 하지만 이제는 술마저 미련 없이 떠나보낸다. 애착하는 것이 - 자의든 타의든 - 하나둘 떠나가는 것을 본다. 요긴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막상 없어진들 크게 대수롭지 않다. 세상사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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