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20) - 로빈슨 크루소

샌. 2023. 10. 19. 11:11

이 책을 언제 읽었는지 까마득하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 생활을 할 때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는 느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교회에 부지런히 다닐 때인 20대 초반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에 완역본을 다시 읽어보니 같은 책이지만 새롭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

 

디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영국에서 출간한 해는 1719년이다. 당시는 서구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식민지의 자원을 약탈하던 시기였다. 이 책에는 이런 시대적 배경이 깔려 있다. 크루소의 사고방식도 철저히 제국주의적 시각이다. 크루소의 사고나 행위를 보면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기독교 사상이 결합하여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보인다. 크루소는 치밀하면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근대인의 모습 그대로다.

 

크루소는 노예로 쓸 흑인을 구하러 아프리카로 가다가 난파하여 혼자 살아남는다. 그는 무려 28년간 무인도에서 혼자 생존해 나갔다(마지막 4년은 '프라이데이'라는 원주민 하인이 생겼지만). 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크루소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난파선에서 생존에 필요한 온갖 물품을 구할 수 있어서였다. 만약 맨몸으로 출발했다면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런 호조건에서 크루소는 5년쯤 지나서는 섬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든다. 여유가 생기자 크루소는 삶의 의미를 기독교 신앙에서 찾으며 더욱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 기독교가 자기 위안이 되면서 삶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청교도가 신대륙에 정착하면서 가졌던 과정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루소의 생존에 대한 집념은 초인적이며 상찬 받을 만하다. 그는 인간이 문명을 이룬 주요 과정을 혼자 힘으로 재현한다. 난파선에서 가져온 씨앗을 파종하여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넉넉한 수확물을 얻게 되고 빵과 술까지 만들어 먹는다. 야생 염소를 가축화하여 목장도 세운다. 그 와중에도 크루소는 매일 일기를 쓴다. 난파선에서 가져온 종이와 잉크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성실하고 철저한 근대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크루소의 생존과 탈출은 개인적인 능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서구인의 적극적인 도전 정신을 크루소가 대표로 잘 보여준다.

 

책의 후반부에는 크루소가 자신의 사업을 관리하며 부를 일구어 나가는 과정이 길게 나온다. 이 역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때 유럽은 상업자본주의가 국력의 바탕이 되면서 너도나도 중상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개인이나 국가나 힘을 추구했는데 이 힘은 물질적 부에서 나왔다. 여기에 근면 성실의 윤리를 앞세운 프로테스탄티즘이 일정한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 전체에 이런 사상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이제는 단순한 모험담이나 회심의 서로 읽히지 않는다. 18세기 서구인들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봤는지 알려주는 책이라는 데 비중을 더 두고 싶다. 원주민에 대해서도 크루소는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직 식인 풍습만을 끔찍하게 묘사하며 그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여긴다. 흑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데에도 아무 거리낌이 없다. 이것은 당시 유럽인들의 보편적인 인식이었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출판되자마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점에 환호를 보냈을 지는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300년이 흘렀다. 이 책에서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인 자본주의는 이제 전 세계의 이즘이 되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다른 의미로서의 새롭게 탈바꿈한 로빈슨 크루소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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