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수락산길을 걷다

샌. 2010. 8. 12. 19:37


10여 년 전 쯤이었다. 탈서울을 결심하고는 서울과의 안녕을 기념으로 서울과근교의 모든 산을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때 수락산을 오른 뒤 이번에 두 번째로 수락산을 찾았다. J, Y, 두 형과 함께 했다.

 

지하철 장암역에서 만나 박세당 고택을 지나니 바로 계곡으로 연결되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석림사가 나왔다.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던 절이라고 J 형이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계곡에서 쉬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수락산은 화강암 암반으로 되어 있는데 이름 그대로 물이 풍부하고 계곡도 잘 발달되어 있다. 북한산이나 도봉산의 명성에 가려 있어 자주 찾지 않았지만 수락산만의 아름다움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었고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산을 쓸까말까 망설이게 하는 비였다. 젖은 바위가 조심스러웠지만 대신 시원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정상을 포기하고 샛길을 통해 깔딱고개로 갔다. 깔딱고개 곰바위에 있는 매월정(梅月亭)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했다. 서편으로는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자 주위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시가 여러 편 게시되어 있었는데 선인들의 숨결을 느끼며 하는 산행도 의미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 구절이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十年南北去

岐路正銷魂

 

십 년 세월 남북으로 떠다녔건만

갈림길에만 서면 애가 타누나

 


이때쯤 산길에서는 참나무 종류의 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진 것을 자주 본다. Y 형으로부터는 그 주범이 도토리거위벌레라는 설명을 들었다.이 벌레가 도토리에 알을 낳고는 가지를 끊어 땅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야 도토리 속을 파먹고 자란 애벌레가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기 때문이란다. 산 아래 어느 나무 밑은 온통 부러진 가지와 잎들로 덮여 있었다.

 

산을 내려와서는 두부정식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인근에 있는 천상병 공원을 찾아가 보았다. 옛날에 천 시인이 상계동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 수락산 자락에 그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든 모양이었다. 시 하나하나들이 미소를 짓게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Y 형은 이 시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수락산 아래서 사는데

여름이 되면

새벽 5 시에 깨어서

산 계곡으로 올라가

날마다 목욕을 한다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의

제법 다정한 이야기들

큰 바위 중간 바위 작은 바위

그런 바위들이 즐비하고

나무도 우거지고

졸졸졸 졸졸졸

윗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더러는 무르팍까지

잠기는 물길도 있어서.....

(내가 가는 곳은 그런 곳)

목욕 하고 있다 보면

계곡 흐름의 그윽한 정취여....

 

- 계곡 흐름 / 천상병

 


* 산행 시간; 10:30 - 14:00

* 산행 경로; 장암역 - 석림사 - 깔딱고개 - 매월정 - 능선길 - 수락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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