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공광규

얼굴 표정과 걸친 옷이 제각각인

논산 영주사 수백 나한

언제 무너져 덮칠지 모르는 바위벼랑에 앉아

편안하게 햇볕 쬐고 있다

새 소리 벌레 소리 잡아먹는

스피커 염불 소리에 아랑곳 않고

지저분한 정화수 탓하지 않고

들쥐가 과일 파먹어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다

다람쥐가 몸뚱이 타고 다녀도 아랑곳 않고

산새가 머리 위에 똥을 깔겨도 그냥 웃는다

초파일 연등에 매달린 이름들

세파처럼 펄럭여도 가여워 않고

시주돈 많든 적든 상관 않는다

잿밥에 관심이 더한 스님도 꾸짖지 않는다

불륜 남녀가 놀러 와 합장해도 혼내지 않고

아이들 돌팔매에 고꾸라져도

누가 와서 제자리에 앉혀줄 때까지

그 자세 그 모습이다

바람이 휙 지나다

하얀 산꽃잎 머리 위로 흩뿌리면

그것이 한줌 바람인 줄만 알고.....

 

들짐승과 날새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결 속에

화도 안 내고 칭찬도 안하는

참 한심한 수백 나한들

 

나도 이 바람 속에서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 공광규

 

시 속에서 장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가늘게 장맛비가 뿌리는 일요일 아침이다. 하늘은 회색 구름에 덮여 있고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린다. 저 멀리 산은 묵묵히 앉아 있다. 모두가 그렇게 닮아있구나. 나도 이 바람 속에서 한심(閑心)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