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어떤 비대칭 장단 / 권순진

샌. 2010. 7. 3. 10:47

어느 보험회사 직원들의 멀리 소풍 갔다 돌아오는 길이다

방향이 같은 김 과장과 이 여사가 카풀로 동승했고

박 여사도 이웃인 강 대리의 승용차 옆자리에 올라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둑하게 서쪽 하늘이 물들 듯 피곤이 내려와 앉았다

김 과장은 깍듯하고도 나긋하게 '좀 쉬었다 갈까요?'

옆자리의 이 여사에게 쿡 말을 건넨다

이 여사는 잠시 뜸을 들이나 했는데

상큼하고 쿨하게 대꾸한다 '그러죠 뭐'

힘을 받은 차는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는 태도와

순간의 가속으로 '늘봄모텔'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차 어서 돌려요'

 

비슷한 시간 강 대리 역시 피곤하긴 마찬가지였다

잠시 쉬었다 갈 요량으로 박 여사에게 공손한 제의를 했다

하지만 젊은 호흡으로 단호히 '잠시 쉬었다 가실까요?'

박 여사의 볼이 잠시 상기되는가 싶더니

'그럼 그럴까요 그렇잖아도 피곤해 뵈시던데.....'

차는 잽싸게 핸들을 꺾어 막 네온이 깜박이기 시작한

'드림모텔'을 횡 하니 지나 간이 휴게소 자판기 앞에 섰다.

'아니 이게 뭐예요 쉬었다 가자는 게 그럼.....'

 

- 어떤 비대칭 장단 / 권순진

 

우중충한 장마 속에서 재미있는 시 한 편을 읽는다. 시가 꼭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이런 유머시도 필요하다. 폼 잡고 클래식을 듣기도하지만 뽕짝이 더 가슴을 울릴 때도 있잖은가. 도리어 진솔하고 적나라한 일상의 말에서 삶의 진실이 더 드러나는 법이다.

 

유식한 척 하자면 통속적으로 보이는 이 시에서도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딜레마를 찾을 수 있다. 쉬었다 갑시다, 라는 말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어의로 쓰일 수 있다. 잘못 알아듣다가는 뺨 맞기 십상이다. 살다 보면 이런 식의 엇박자 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나는 A의 의미로 말했는데 상대는 B로 해석한다.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인간관계는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눈짓만으로도 알아채는 정도가 돼야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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