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샌. 2010. 6. 15. 13:07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 상처에 대하여 / 복효근


상처를 얘기하는 복 시인의 시 중에 ‘탱자’가 있다. 밖으로만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난 가시로 인해 찔리고 상처받으며 살아내고 있는 탱자를 그리고 있는 시다. 탱자의 살갗은 제 가시로 저를 찔러대고 할퀸 수많은 상처투성이다. 스스로를 찌르는 자해의 가시로 인해 노랗게 익은 탱자는 더 향기가 진하다. 탱자는 시인 자신의 모습이겠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을까. 상처 없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것이 밖의 가시든 안의 가시든 모든 삶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주조개의 상처에서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지듯 상처가 익으면 꽃이 되고 향기가 된다.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기 위해서는 상처가 꼭 필요한가보다. 지금의 상처는 아프지만 훗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고통이다. 그러나 상처의 결과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아름답게 숙성되지만 어떤 사람의 상처는 썩어 악취가 난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향해 원망과 불평과 저주가 쏟아진다. 그러나 내 상처는 적당히 잘 발효되고 숙성되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잊지 말자.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사실을. 모든 향기로운 것들은 상처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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