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의 얼굴은 누구를 닮았던가요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형을 보곤 했지요
오늘 형이 그리운데 어디 가서 볼까 하다
옷매무새 바로 하고는 시냇물에 비춰봅니다
-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그리워하며 / 박지원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上
- 燕巖憶先兄 / 朴趾源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뛰어난 산문을 썼지만 시는 별로 남기지 않았다. 이 시는 형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것으로 연암집(燕巖集)에 수록되어 있다. 연암은 4남매 중 막내였는데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형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그 형이 연암의 나이 51세 때에 세상을 떴다. 연암은 형이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연암 골짜기의 물가에 앉아 이 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연암은 가족과 함께 개성의 연암이라는 골짝에 은거하고 있었다.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한 그의 글쓰기는 이 시에서도 전해진다. 형에 대한 그리움을 평범한 말들을 가지고 참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아버지와 형을 만나고 싶어 하는 육친의 정이 또한 애절하다. 그리고 연암의 그 형제애가 부럽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따스한 형제의 정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형제간에 틀어져 서로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게 흔한 세태가 되지 않았는가. 아, 그것 또한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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