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참여연대 앞의 거리가 연일 보수단체의 시위로 시끄럽다. 천안함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낸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딴지를 걸었다는데서 분노를 느끼는 모양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나라는 민주국가가 아니다. 더구나 참여연대는 NGO 단체로 정부와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서한을 보낸다고 나라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준에 미흡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나라에서 발표했다고 일사분란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전체주의국가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더구나 천안함 조사결과는 누가 보아도 의문점 투성이다.
국무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참여연대에 대해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 줄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국민총리의 인식도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과격 보수단체들 생각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사르트르는 알제리 반군을 지원했다. 심지어는 군자금을 모아서 비밀리에 전달하기도 했다.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사르트르를 구속하고 총살시키라고 하자 드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인이야.” 나라의 지도자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도량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국가의 지침과 딴 목소리를 내면 불순분자의 이적행위로 보는 냉전시대의 사고가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한 아이가 책을 읽으면 다른 아이가 그대로 따라 읽는 하급반 교실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란 말인가. 권위가 “그렇다”고 하면 아무 의심 없이 “그렇다”고 복창을 해야 하는 쓸쓸한 풍경 말이다. 이러다가는 학교의 월요 애국조회도 부활하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야 되는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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