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꽃기름주유소 / 고경숙

샌. 2010. 6. 11. 11:16

얼었다 녹은 봄날 산벼랑

백설기처럼 푸슬거리는

산옆구리를 쥐고 달린다

포장을 마다하고

일부러 견고하지 않은 길은

덜컹이며 바람을 타다

오르막에서 멈춘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지 한참,

고갯마루 작은 주유소엔

대형 탱크로리에서 꽃무더기를

옮겨 담고 있다

고객님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

나는

L당 가격표를 보는 대신 꽃향기를 맡아본다

들꽃유로 가득이요

서둘러 주유기를 꽂고 뒤차로 간다

내 뒤 봉고는 콩기름을 주문한다

주유원이 탁탁 엉덩이를 치면

꽃향기를 내뿜으며 부릉거린다

카드전표로 가져온 꽝꽝나뭇가지에

손도장 꾹 눌러주고

출발!

손님, 내리막길은 무동력이구요,

봄은 비과세입니다.

 

- 꽃기름주유소 / 고경숙

 

4대강 삽질 현장을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차일피일 뒤로 미루기만 한다. 많이 아프고 화가 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못 본 척 외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 곁에 가서강의 아픔에 동참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인간의 유전자가 변하지 않는 한 자연과 화해하기는 그른 것이 아닌가고 생각된다. 꼬리 없는 원숭이들이 왜 그렇게 자연과 적대적인지 정말 불가사의하다. 그들 역시 자연에서 생겨났고 자연의 일부분인데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시행착오를 겪어야 난폭한 동물성 욕망을 잠재울 수 있을까. 식물성의 꿈이 활짝 피어나는 '꽃기름주유소'는 어디 없나요? 달콤한 꽃향기를맡으며 달리는 '꽃향기자동차'는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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