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히친스(C. Hitchens)는 스스로를 물질주의자라 부른 대로 신과 종교에 대해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요사이 반종교적인, 구체적으로는 반기독교적인 책이 유행하는데 히친스가 쓴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도 그런 계열의 책이다. 내가 읽어본 중에서는 상당히 과격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과 비슷하지만 종교를 비판하는 관점은 약간 다르다.
저자가 종교를 비판하는 근거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책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인류의 광기와 악행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가 보기에 종교는 아편이며 독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과 죄악의 사례는 산더미보다 많다. 책을 읽다보면 인류는 종교라는 형식을 빌려 내면의 악을 배설해내는 것 같다. 그러나 너무 유물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어 편향된 시각이라는 느낌이 내내 따라다닌다. 현상적인 서술일 뿐 종교나 신이 필요하게 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종교나 신은 인간과 따로 떨어져 해석될 수 없는 게 아닐까. 나로서는 그럴수록 인간의 불완전성이 더욱 드러날 뿐이다. 모든 것이 신과 종교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 책의 내용은 많이 불편하다. 종교는 사기고 위선이라고 저자는 단호하게 주장한다. 저자의 붓 끝에서 신앙인 그 누구도 심지어는 성인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테레사 수녀, 간디, 킹 목사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흠결로 그의 전 존재가 부정되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뒷면의 어두운 부분을 밝히는 건 좋지만 좀 너무 하다 싶기도 있다. 종교인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그런 잣대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믿음에는 일정 부분 광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광기가 또 다른 광기를 낳아서는 안 된다.
나는 저자처럼 종교를 백해무익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에 내재하는 종교심에는 경의를 표한다. 종교는 살아 숨 쉬는 영이며 생명이다. 신앙은 사물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명료하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에 있는 신비에 대한 경외감이기도 하다. 또 종교에 대한 저자의 기본 관점을 인정하더라도 종교가 연약한 인간의 영혼에 주는 위안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일종의 플레시보 효과라고 해도 좋다. 가짜 약을 진짜로 믿고 먹어도 병이 치유되는 효과는 비슷하다고 한다. 인류는 아직 영혼의 유아기인지도 모른다. 다만 종교가 하나의 체제로 굳어지고 권력화 될 때 진리가 왜곡되는 현상은 끊임없이 비판받아야 한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미끼로 인간을 억압하는 종교적 시스템은 없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스스로의 쇄신 노력이 없다면 기존 종교는 사멸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자기만족에 대해 경계했다. 개인의 구원과 자신의 영적 평화에만 집착하는 것은 거룩한 신앙이 아니라 어쩌면 영혼의 탐욕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통 신앙이 좋다고 하는 말에 들어있을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이면을 조심해야 한다. 편협한 신앙은 이기주의자를 만들 수 있다. 단순히 믿음을 통한 자기 위안에 만족하다가는 자기 기만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그것은 육체의 정욕만큼 무서운 영혼의 정욕이다. 또, 종교는 기본적으로 세상의 가치관과 구별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본다. 그러므로 현실세계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종교가 현실과 야합할 때 타락이 시작된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종교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도 신앙인 각자의 내면에서 현재진행형인 사실이 아닐까.
저자는 책의 끝에서 종교가 필요 없는 새로운 계몽 시대를 주장하고 있다. 종교 없는 인본주의적인 문명을 위해 싸우자고 격려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종교가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과 같이 돈과 권력에 야합하는 기존 종교는 소멸할 것이다. 일부 성직자들은 인간의 영혼을 미끼로 돈을 벌고 권세를 누리는 장사꾼들이다. 나는 종교 다음의 종교를 내다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현 종교의 빈자리를 채울 것은 종교보다 고약한 또 다른 미신이 될 것이다. 그것은 과학이나 인간 이성에 대한 절대맹신일 수도 있다. 종교를 근원적으로 부정할 것이 아니라 종교에 내재된 인류의 깨달음과 지혜를 내면화시키고 심화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맞는 말이다. 인간이 체험하고 묘사한 신은 당시 인간과 사회의 의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주의 한 구석에서 찰나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완전한 신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겠는가. 과거의 오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도 우리가 아는 것은 넓은 바닷가에 있는 모래알 하나밖에 되지 못한다. 역사상 어느 시대에서나 그 시대가 기술적, 문화적으로 첨단이었으므로 인간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뛰어나다고 착각할 뿐이다. 지금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 그 신이 무엇을 뜻하든,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인류 의식의 진화는 모호한 신의 형상을 점차 밝게 드러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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